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여의도에서 통하는 말장난


"헌법에 명시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에 연연하지 않고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 성실히 임할 것이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검찰 소환에 응하지 않는다. 다만 검찰이 체포영장을 가져온다면 그에 응하기로 했다."

첫 문장은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이 자신의 블로그에 '체포동의안 처리에 임하며'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의 일부다. 그는 지난 11일 국회에서 진행된 체포동의안 표결에 앞서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도 자발적으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두 번째 문장은 검찰이 박 원내대표를 소환하겠다고 밝히자 이를 거부하는 자세를 취했다가 하루 후인 18일 다시 내놓은 민주통합당의 공식입장이다. 이날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박 원내대표는 "제 생명을 걸고 정치검찰과 싸우겠다"며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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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원내대표와 정 의원은 속한 당도 다르고 정치적 이력도 다르지만 검찰 수사에 맞서는 태도는 묘하게 닮아 있다. 무엇보다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면서도 실상 '협조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전세를 이끌어가는 모습이 일치한다. 아무 죄가 없는 나는 헌법서 보장한 특권도 버리는데 표적수사에 능한 정치검찰이 억지로 잡아넣으려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법을 잘 아는 그들이 법의 허점을 노리고 검찰 수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들이 줄곧 해온 말을 찬찬히 뜯어보자.

제 발로 걸어서 법원으로 오겠다는 정 의원의 말은 여의도에서는 먹힐지 몰라도 사법체계 안에서는 불가능하다. 현행법에 따르면 법원은 영장실질심사에 앞서 피의자의 신병을 국가가 강제로 확보할 수 있도록 구인영장을 발부해야 된다. 이건 결국 동료 의원들의 의견을 묻는 형식으로 이어질 것이다.

'나를 잡아갈 테면 체포영장을 받아와라'라는 박 원내대표의 메시지도 마찬가지다. 법원은 체포영장 발부에 앞서 국회에 동의 여부를 물어야 한다. 저축은행에서 돈을 받았다면 할복도 서슴지 않겠다는 그는 이 조건부 문장을 꺼내기 전에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동료 의원을 떠올렸음에 틀림없다.


이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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