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난 16일 이후 대한민국은 '슬프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와 지척에 근무지를 둔 필자는 바로 내 이웃과 지역사회에 닥친 사상 초유의 비극적인 사태를 남다른 소회를 갖고 겪고 있다. 국화꽃 향기 속에 초롱초롱 빛나는 눈망울로 환한 미소를 띤 채 추모객을 마주하는 진정 꽃보다 예쁜 얼굴들을 바라보며, 못난 어른들은 그저 "미안하다, 미안하다!" 한두 마디 메모지를 그들의 영정에 남길 뿐, 그들의 생명을 지키는데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후회와 자책감에 빠져들고 있다.
20여년 전 서해훼리호 사건이 그러했고, 씨랜드청소년수련원 화재사건, 대구지하철 사고, 천안함 침몰사고, 그리고 불과 몇 개월 전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사고가 그러했던 것처럼 세월호도 곧 망각이라는 깊은 수렁 속에 사라져 갈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어떤 외신의 날카로운 지적처럼 우리는 그 수많은 희생과 고통을 겪은 과거로부터의 교훈이라는 자산을 하나도 수확하지 못했음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저 천진무구한 '수백명'에 달하는 학생들과 위기의 순간에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학생들을 수호했던 천사와 다름없는 담임선생님, 학급 전체가 아니 2014년 단원고 2학년 전체가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나 암담하고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이번에도 단 며칠간의 부산한 추모행사를 끝내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면 열일곱 한창 푸른 꿈을 채 펼치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어린 학생들의 생명이 진정 아깝고 또 아깝지 않을까. 그들의 억울한 희생과 죽음이 진정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절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재난방지 시스템을 정비하고 유사 사고에 대비한 실천 가능한 해양사고 대처 방안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트라우마를 겪을 생존자와 유족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기 위한 프로그램 마련에 치밀한 계획도 세워야 한다. 전쟁·대학살·자연재해, 그리고 특히 해양사고와 같은 위급한 사고로부터 생존한 사람들은 평생 죄의식과 함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고 한다. 20세기의 비극 홀로코스트의 생존자 가운데 이탈리아 출신 대문호인 프리모 레비처럼 극한 상황에서 살아났어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가 많았다. 뿐만 아니라 수용소를 직접 체험하지 않은 희생자들의 2세·3세들에게도 그러한 비관적인 삶이 되풀이됐다는 학술보고도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트라우마를 가리켜 '영혼의 가시'라고 불렀다.
최근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관하는 각종 문화행사·축제들이 연달아 취소되고 공연예술계 종사자들도 예정된 공연행사를 순연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또한 관련 정부부처에서 공연산업계 및 기획회사들에 공연을 자제하라는 공문을 배포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공연예술계의 임무를 거기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국민감정에 역행하는 소비적·향락적 행사들은 중단돼야 마땅하지만 전사회적인 상처·분열·고통을 치유하는 데 공연예술계가 침묵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 공연예술계가 극장 문을 닫고 무대 뒤로 철수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영혼에 박힌 가시를 제거하는 매뉴얼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