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역협회 김정관 부회장
야구는 타이밍의 예술이다. 승부의 분수령이 되는 절묘한 순간에 투수교체나 대타 투입으로 경기의 흐름을 순식간에 반전시키고 승부를 결정짓는다. 타이밍은 너무 빨라도 너무 늦어도 안된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타이밍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뒤바뀌기도 한다. 하물며 국가 경제의 미래를 결정하는 정책에서 타이밍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세계의 경제성장을 견인해온 무역이 수년째 부진하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폭발적인 성장세를 구가하던 중국도 최근 들어 세계적 수요부족과 공급과잉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수출의 4분의 1을 중국에 의존하는 우리도 최근 7개월째 수출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제 우리의 수출부진을 반전시킬 한 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행히 우리는 지난해 말 중국, 베트남, 뉴질랜드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국회의 비준 동의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나라의 제1, 4위 수출대상국인 중국, 베트남과의 FTA를 조기에 발효시켜 우리 기업들이 이들 시장을 선점하도록 해야 할 때다.
중국은 10%대의 고성장 시대를 마감하고 7% 내외의 중성장기를 의미하는 신창타이(新常態) 시대에 들어섰다. 경제성장 전략도 수출과 투자 주도에서 내수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 결과 중국은 부가가치가 낮은 가공무역을 빠른 속도로 축소하고 있다.
우리의 중국 수출이 최근 부진한 것은 이 같은 중국의 정책 변화와 중국기업들의 경쟁력 제고로 중간재를 자체 조달하는 비중이 커진 탓이다. 중국경제의 구조적 변화는 우리 기업에 새로운 대응전략을 요구하고 있다. 다행히도 우리는 한중 FTA라는 훌륭한 카드를 가지고 있다.
한중 FTA가 발효되면 그 동안 높은 관세로 인해 접근이 쉽지 않았던 중국의 내수시장을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공략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우리 기업들이 대중국 수출시 가장 큰 애로 요인으로 꼽아온 각종 비관세장벽 해소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한중 FTA는 분야별 협력채널을 통해 우리 기업들이 차별적인 대우를 받지 않도록 시정해나갈 수 있는 제도적 틀을 갖춰 놓았다.
한중 FTA가 우리의 경제적 실익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비준 동의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우리 업계가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관세철폐 스케줄을 고려한다면 연내 발효가 꼭 이뤄져야 한다. 한중 FTA는 발효 시 관세가 한 번 인하되고 이후 매년 1월 1일에 추가적으로 감축된다. 발효가 내년으로 미뤄질 경우 관세 인하 스케줄이 1년 지연돼 우리 업체는 불과 수개월의 차이로 1년의 기회를 잃게 된다. 최근 우리 수출 전선에 짙게 드리운 먹구름을 생각할 때 1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중국 제조업의 추격도 눈여겨봐야 한다. 최근 중국의 제조업은 기술혁신과 정부의 정책지원을 무기로 중국 내수시장에서 우리 업계와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한중 FTA의 조기 발효는 우리 제품에 대한 관세 인하로 매섭게 추격해오는 중국 기업의 도전으로부터 우리 제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우리가 중국에 비해 경쟁우위를 갖고 있는 서비스 분야에서 중국의 시장 개방을 촉진하기 위해서도 한중 FTA 발효를 서둘러야 한다. 한중 FTA는 발효 후 2년 내 중국의 서비스 시장 개방을 네거티브(negative) 시스템으로 전환하기 위한 후속 협상을 시작해 협상 개시 2년 내 타결짓기로 했다. 발효시기가 빠를수록 중국의 서비스 시장 개방을 앞당길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한중 FTA라고 하는 제구력도 뛰어나고 강속구를 구사하는 아주 훌륭한 투수를 확보했다. 이런 선수를 덕아웃에만 앉혀놓고 경기를 질 수는 없다. 이제 그 선수를 투입해서 경기를 반전시켜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