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CEO 칼럼] '죽음의 계곡' 실리콘밸리


창업을 꿈꾸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실리콘밸리는 꿈의 무대다. 밖으로 드러난 숫자 몇 가지만 봐도 실리콘밸리는 명실상부한 세계 정보기술(IT)산업의 중심지다. 우선 구글ㆍ페이스북ㆍ오라클 등 1,000개가 넘는 하이테크 기업이 둥지를 틀었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벤처캐피털의 43%가 실리콘밸리에 자리를 잡았고 지난해 벤처캐피털이 투자한 자금의 61%가 실리콘밸리에 있는 기업의 몫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컨설팅회사 알토스비즈(Altosbiz)에 따르면 지난해 실리콘밸리에 있던 16개 기업이 미국 주식시장에 화려하게 입성했고 128개 기업은 비싼 돈에 팔리며 대형 인수합병(M&A)의 주인공이 됐다.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창업 초기기업)에 실리콘밸리는 최고의 명당인 셈이다.


현지 이해 없이 진출해 실패 반복

이런 위상 때문인지 한국의 젊은이, 특히 IT 관련 창업을 했거나 준비 중인 예비 창업자들은 실리콘밸리 진출을 꿈꾼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 IT기업만의 꿈이 아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에는 미국인보다 외국인이 만든 기업이 더 많다. 해외에서 시작해 실리콘밸리로 진출한 기업 중에도 성공한 사례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터넷전화 스카이프(Skype)와 소셜 뮤직 사이트 스포티파이(Spotify) 등이다. 이들은 자국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미국 진출에 성공했다. 이처럼 미국 현지 기업을 위협하는 외국 출신의 회사가 점차 많아지는 추세다. 우리나라 기업 중에는 쿠팡ㆍ카카오톡ㆍ티몬 등이 미국 벤처캐피털로부터 당당히 투자를 유치했다.

문제는 성공 사례가 전부는 아니라는 점이다. ‘남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고 확신할 수만은 없다. 벤처업계에서는 실리콘밸리를 ‘데스밸리(Death Valley)’라고 부른다. 철저한 준비 없이 진출했다가 영락없이 실패하고 마는 ‘죽음의 계곡’이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실리콘밸리에도 성공한 곳보다 실패한 기업이 훨씬 더 많다. 이미 수많은 한국의 IT기업이 실리콘밸리에 진출했다가 쓰라린 실패를 경험하고 좌절했다. 이 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국내 굴지의 대기업도 다수 포함된다. 대다수가 “IT산업의 중심지인 실리콘밸리에 법인을 설립하고 투자하면 미국 시장 정착은 시간문제”라고 판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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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건 명백한 오산이다. 목표 지점을 잘못 잡은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미국 사업을 시작하는 출발점일 뿐이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아니다. 그러나 많은 곳이 실리콘밸리를 목표로 한다. 타깃은 실리콘밸리가 아닌 미국 시장 전체가 돼야 한다.

실리콘밸리는 단지 자금과 기술ㆍ인력이 모인 특수한 지역일 뿐이다. 사업을 준비하고 시작하고 꾸려가기에 실리콘밸리는 편하다. 그러나 그뿐이다. 실리콘밸리가 아닌 미국 시장 전체에 대한 이해가 더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 진출은 어떤 회사와 손잡고 어떤 방법으로 협력할 것인지가 성패를 좌우한다. 하드웨어 제품은 어떤 유통회사 또는 마케팅회사와 협업을 할 것인지 꼼꼼히 확인하고 따져봐야 한다. 소프트웨어나 콘텐츠 사업은 어떤 배급사(퍼블리셔)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

협력사 물색 등 철저히 준비해야

실리콘밸리는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요술공이 아니다. 한국의 IT기업들은 실리콘밸리에 진출하려는 첫 번째 이유로 투자유치를 꼽지만 투자유치 자체가 기업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가치를 창출해 고객에게 전달해주는 데 사업의 목표를 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는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투자자를 찾아 나서기 전에 할 일이 많다. 거시적인 시장조사와 냉철한 현황파악, 철저한 제품과 서비스의 현지화, 유통에 대한 이해, 그리고 여러 법규와 인프라에 대한 적응이 먼저다.

실리콘밸리는 전 세계 IT기업들이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각축장이다. 이곳에 법인을 설립하거나 사업을 할 때는 세계적인 기업과 치열하게 결전을 펼치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밖으로 드러난 성공 스토리나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무작정 달려들었다가는 뼈도 못 추리는 곳이 실리콘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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