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포럼] 화재피해 키우는 일괄발주

이종영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해 한국전기안전공사와 소방방재청이 제출한 화재발생에 대한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2012년 주택과 빌딩 등에서 발생한 전기화재 건수는 총 9,225건으로 재산피해액은 698억원에 달했다. 화재발생으로 인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에 대한 보도가 하루가 멀다하고 이어지고 있다.

저가 하도급 구조 소방시설 부실 원인


소방관련 법령은 화재발생 초기 진압될 수 있도록 소방시설을 건축에 설치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런데 화재발생 초기에 작동하도록 설치된 소방시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서 대형 화재를 유발하는 현상을 빈번하게 경험할 수 있다.

소방시설이 화재발생 초기에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못하는 원인은 두 가지로 분석될 수 있다. 하나는 소방관련 법령에 근거하는 소방시설 설치기준의 잘못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소방시설 설치기준은 선진국 수준에 이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화재의 원인은 소방시설의 설치기준에 흠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다른 하나는 실제 소방시설공사가 소방관련 법령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적합하게 설치되지 않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소방시설의 설치기준은 화재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스프링클러가 작동해 진압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런데 자동소화기인 스프링클러가 화재가 나도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화재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다. 소방시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원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소방시설공사의 부실이다.


소방시설은 전기시설이나 위생시설과 같이 해당 건물의 이용자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시설이 아니라 화재가 발생할 때에 비로소 작동되는 비상시설이다. 그 결과 소방시설은 화재가 발생하지 않으면 시설물의 수명기간 동안 한 번도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소방시설이 가지는 이와 같은 숙명적 특징 때문에 평상시에 시설물의 이용자나 시설물 소유자는 소방시설에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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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시설의 부실공사는 건축주가 건축공사나 전기공사와 함께 발주하는 데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분리발주제 도입해 폐해 막아야

소방시설공사를 건축공사나 전기공사에 통합해 일괄발주함으로써 발주를 받은 건축공사업자·전기공사업자는 소방시설공사를 하도급으로 주게 되고 하도급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소방시설은 원래 소방관련 법령에 따라서 설치해야 하는 최소한으로 공사비를 배분하게 된다.

실제 마지막으로 하도급을 받아 소방시설공사를 하는 사업자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이익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부실공사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결과적으로 소방시설이 설치된 건물에서 화재가 초기에 진압되지 못하는 근본적인 출발점은 저가 하도급이라는 공사비 시스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소방시설공사는 공사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 이하로 설치하는 건축공사시스템으로 인해 화재피해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 더 이상 화재로 인한 인명과 재산적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소방시설공사에 대해 건축공사나 전기공사에 일괄발주가 아니라 분리발주를 하도록 관련 법령에 대한 정비가 요구된다.

겨울에 화재로 인한 국민의 피해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도록 당국은 소방시설공사의 분리발주제도 도입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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