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전방위경쟁시대…“변해야 산다”/금융산업 지각변동

◎자율·개방화 대세 업계판도 대변화/업무영역 대폭완화 「안전판」 사라져/금리자유화로 출혈 수신경쟁 가속/외국은 내년 진출… 체질개선 시급지난 91년 8월부터 시작된 「4단계 금리자유화계획」이 6년만에 완결되면서 단 하루만 맡겨도 10%대의 고금리를 주는 단기상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고객확보를 위한 이같은 은행의 출혈경쟁은 앞으로 4단계금리자유화가 가져올 파장의 서막에 불과하다. 변하지 않는 은행은 더이상 살아남지 못한다는 생존의 법칙이 보수적인 은행산업에도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또 금융권간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정부가 올초 발표한 금융개혁방안의 핵심은 금융권간 업무영역조정. 은행 증권 보험의 3대축을 중심으로 핵심업무를 제외하고는 서로 상대방의 업무영역에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금융권간의 울타리가 낮아진 만큼 경쟁이 그만큼 더 치열해졌다. 은행권내부에서는 특수은행이 독점해 오던 금융채 발행을 시중은행에도 허용해 준 대신 산업 장기신용은행등 특수은행에는 단기상품인 CD(양도성예금증서)발행을 허용해 줌으로써 장·단기업무간의 울타리를 낮추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달 7일부터 실시된 4단계 금리자유화로 3개월미만의 수시입출식 정기예금(저축·자유저축·기업자유예금) 금리가 자유화돼 투신의 MMF, 종금의 CMA 등 단기성 상품과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했다. 은행권은 이제 종금 투신등과의 금융권간 경쟁과 함께 선·후발은행간 단기상품경쟁, 시중·특수은행간의 장·단기상품 경쟁이라는 전방위 경쟁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4단계금리자유화 이후 가장 먼저 신상품을 내놓은 곳은 하나·보람·한미 등 후발은행. 이들 은행은 상대적으로 자유화대상 예금액이 적어 금리인상이 수지에 미치는 영향도 상대적으로 미미한 점을 이용, 공격적인 전략을 취한 것이다. 이후 조흥 상업은행 등 선발은행들도 고객이탈 방지를 위해 고금리 단기상품을 속속 내놓으면서 금리전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지난달 중순께부터 판매되기 시작한 시장금리부 수시입출금식예금(MMDA)은 불과 보름만에 2조원의 판매고를 올리며 금융시장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후발은행들은 추가로 금리를 인상하는등 지속적인 차별화전략을 구사하고 있어 앞으로 금리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은행들은 이번 4단계 금리자유화조치로 지금까지 효자노릇을 해오던 저코스트 조달자금이 크게 줄게 돼 수지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유화대상 예금의 잔고는 지난해말 현재 저축예금 23조5천억원, 자유저축예금 19조8천억원 기업자유예금 7조5천억원 등 모두 50조8천억원수준. 금리는 저축·자유저축예금이 각각 3%, 기업자유예금이 2%로 제한됐었다. 그러나 최근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MMDA형 신상품은 예금액에 따라 1­10%까지 금리를 차등적용하고 있다. 평균적으로 금리가 2%만 상승한다고 해도 은행권 전체로는 1조원이상의 수지부담이 발생한다. 대기업의 잇따른 부도 및 부도유예협약 적용으로 거액의 부실여신을 떠안게 된 은행으로서는 설상가상의 상황에 부딪친 것이다. 연초 한보그룹의 부도이후 진로 대농이 무너지고 급기야 재계순위 8위인 기아마저 부도유예협약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받고 있다. 올들어 부실기업으로 인한 은행권의 부실여신액은 ▲한보 3조4천7백67억원 ▲진로 1조2천22억원 ▲대농 6천27억원 ▲기아 5조3천8백45억원 등 4개 그룹만 해도 줄잡아 10조원을 넘는다. 부실대출이 많은 일부 은행의 경우 한국은행으로부터 특융 지원이 없을 경우 연간 적자규모가 1조원에 육박하는 등 스스로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내몰리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과거와 같은 지원을 적극 삼가고 있는 모습이다. 한보부도 이후 진로 대농 기아 등 거대재벌의 잇따른 부실에 대해 과거처럼 직접적인 개입을 자제하는 대신 금융기관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발짝 물러서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금융자율화가 가져온 또다른 이면이다. 이밖에도 금융자율화의 영향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은행들은 고객유치를 위해 단기 고금리상품의 수신을 경쟁적으로 늘리고 있지만 이 자금을 운용할 마땅한 대출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고금리로 조달한 자금을 운용, 이익을 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따라 조만간 자금조달과 운용 사이의 기간 불일치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이러한 단기조달 자금을 장기대출에 사용할 경우 금리변동에 따른 리스크가 새로운 문제로 부각될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가입을 계기로 본격화된 각종 금융자율화조치가 너무 성급했다는 자성론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금융의 자율화·개방화는 더이상 늦출 수 없는 대세다. 기아그룹이 부도유예협약대상으로 선정되자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S&P사는 기아에 대한 여신액이 많은 제일 외환 신한 한일 장기신용은행을 「신용감시대상」으로 선정했다. 또 무디스사는 산업 기업은행 등 4개 국책은행에 대한 신용등급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구체적인 신용등급 조정을 위한 자료수집에 착수했다. 부실기업의 문제가 곧바로 금융기관에 대한 신용등급 하향조정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국가전체의 신인도와 직결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예금보험공사를 발족하는등 금융시장의 경쟁격화에 따른 부실금융기관 처리문제를 위한 준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는 금융자율화라는 거대한 파고앞에서 이제 한갖 모래성에 불과하게 됐다. 오는 98년말부터는 외국은행들의 국내진출이 전면 허용된다. 새로운 자율금융시대에 걸맞는 체질개선이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이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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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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