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감을 맛본 사람들이 힘을 합쳐 세계 최고가 되고 사회적 약자에게 손을 내밀어 이끌어준다면 경제불황으로 인한 사회적 피로를 함께 극복해나갈 수 있습니다. 건강하게 살고 싶어 하는 요즘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운 파장인 클래식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게 제 몫입니다."
오는 31일 삼성생명공익재단의 '2012 비추미여성대상 특별상'을 받는 서혜경(52ㆍ사진) 경희대 음대 교수는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유방암 투병으로 깨달은 나눔정신을 더욱 확대하라는 격려여서 책임감도 크다"고 말했다.
다섯 살 때 피아노를 시작한 서 교수는 세계 무대에서 활약한 우리나라 1세대 음악영재로 최연소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다. 지난 1972~1973년 5ㆍ16민족상을 2회 연속 수상하고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스무 살이 되던 1980년 이탈리아 부조니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최고상을 받으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고 이듬해 최연소로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미국 줄리어드음대ㆍ대학원에 다니면서 베를린필ㆍ런던필 등 주요 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미국 카네기홀은 1988년 그를 세계 3대 피아니스트로 선정했다.
지독한 연습 벌레인 그는 "북한의 '새벽별 보기 운동'하듯이 매일같이 피아노를 쳤는데 하루 16시간 이상 연습한 날도 적지 않다"며 "어릴 때부터 늘 어려운 과제부터 먼저 해결하려는 도전정신이 강했다. 여성스러운 연주를 거부한 것도 도전정신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여성 피아니스트로는 드물게 힘과 기교를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늘 최고의 자리에 있던 그에게 2006년 위기가 찾아왔다. 오른쪽 림프절까지 전이된 유방암 3기 진단과 함께 미국ㆍ한국의 명의 7명 중 6명으로부터 "피아노를 더 이상 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피아노를 칠 수 있다"고 진단한 서울대병원의 노동영 교수를 믿고 8번의 지옥 같은 항암치료를 통해 신경ㆍ근육을 최대한 살리면서 절제수술을 한지 3일 만에 피아노 앞에 앉았다. 피아노를 칠 수 있는지 조바심도 났고 '반드시 피아노를 쳐야 한다'고 스스로 주문을 외우며 이를 악물었다. 수술과 잦은 방사선치료로 인한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술 3개월 만에 서울시향과 협연하겠다고 해놓고 연습에 매진했다.
혹독하게 자신을 다그쳐온 그는 지난해 여성 피아니스트로는 세계 최초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과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전집을 녹음하며 세계 무대에서도 성공적으로 재기했다. 곡 해석이 어렵고 연주기법이 까다로운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연주는 산악인의 히말라야 등반에 비유될 정도로 도전적인 과제다.
암 발병으로 죽음의 그림자를 봤던 그는 '동행'을 제2의 인생 키워드로 삼았다. 혼자가 아니라 이웃과 함께하겠다는 것. 미국에 서혜경재단(2008), 한국에 서혜경예술복지재단(2009)을 세우고 양국을 오가며 자선공연을 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음악영재들의 멘토를 자청하고 나섰다. 4월 암 완치 진단을 받고는 한국유방건강재단 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행복도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난 40여년간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나만 생각하며 살았다면 이제는 이웃을 돌아보며 함께하는 인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자선공연을 할 때면 유방암을 앓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많은 여성들이 내 손을 꼭 잡고 힐링(치유)이 됐다면서 눈물을 흘리더군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넘어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라는 전문가로서의 목표, 동행과 나눔을 위한 재단 운영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