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엔저 딜레마 커지는 미국… 의회 "환율 조작 규제해야"

美 경제회복·中 견제에 도움

오바마·연준 엔저 묵인했지만 强달러에 제조업 아우성 커져

"엔저 좌시땐 TPP협상 협조 안해"… 민주·공화 양당 압박 거세져

달러당 120엔이 마지노선 분석


일본은행(BOJ)의 추가 양적완화로 엔화 약세가 가속화하면서 미국의 딜레마도 커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나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일본의 디플레이션 탈출이 미국 경제 회복은 물론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중국 견제에도 도움이 된다고 보고 엔저를 묵인하고 있다.

하지만 달러화 강세로 미 제조업들의 아우성이 커지는 가운데 의회는 엔화 약세를 좌시할 경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 협조하지 않겠다며 오바마 행정부를 또다시 압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20엔까지 추락하면 미국도 더 이상 참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주 일본은행의 예상치 못한 통화 부양책 확대로 엔화 가치가 떨어졌다"며 "오바마 행정부가 TPP 협상안에 환율조작을 규제하는 새 규칙을 포함해야 한다는 압력이 민주·공화 양당으로부터 다시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엔저로 자동차 등 미 제조업의 상대적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미국 경제와 일자리가 타격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8일에는 미국제조업연맹(AAM)이 재무부에 중국과 일본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달라는 촉구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민주당 중진인 짐 맥더모트 하원의원은 "디플레이션 탈출이 시급한 일본의 처지는 동정의 여지가 있다"면서도 "엔저가 무역적자 증가, 수출 감소 등 미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TPP 협상에 민주당보다 더 우호적인 공화당조차 최근에는 오바마 행정부가 엔저 대처에 소극적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차기 상원 금융위원회 의장이 유력한 오린 해치 공화당 의원은 "오바마 행정부는 환율조작 문제를 의회와 충분히 협의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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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의 압박이 더 커질 경우 오바마 행정부가 TPP 협상 진전을 위해서라도 엔화 약세에 제동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는 얘기다. 올 1월 미 의회 양당 지도부는 TPP에 상대 교역국의 환율조작 규제 조항 도입, 의회에 협상 과정의 정기적 보고 등을 조건으로 대통령에 무역협상촉진권한(TAP), 이른바 '패스트 트랙'을 부여하는 법안을 제출한 바 있다. 또 환율 규제 조항이 협상 안건에 오르면서 TPP 협상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일본의 양적완화에 따른 미국의 이득이 부작용보다 크다는 게 오바마 행정부와 연준의 고민이다. 실제 오바마 행정부는 '환율조작국 지정 여부는 중국 등에만 해당된다'며 일본 비판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미 재무부도 의회에 제출한 반기 환율정책 보고서에서 중국·독일의 막대한 무역흑자는 비판하면서도 "일본의 양적완화는 경기침체 탈출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도 7일 파리에서 열린 주요국 중앙은행장 콘퍼런스에서 "중앙은행은 경제부양과 물가상승률 목표 달성을 위해 채권매입 등 비전통적 수단을 포함한 모든 활용 가능한 수단을 동원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며 "기준금리가 제로 수준인 상황에서 자산 대량 매입 등의 정책은 국내 소비 회복은 물론 결과적으로 세계 경제에도 도움을 줬다"고 강조했다. 일본은행과 유럽중앙은행(ECB)의 확장적 통화정책을 적극 옹호한 셈이다. 연준이 출구전략을 앞둔 가운데 일본의 양적완화는 글로벌 유동성을 증가시켜 미 국채 금리와 기업들의 자금 조달비용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또 미 정부는 일본이 중국의 영향력 확대 저지를 위한 아시아 전략의 한 축을 담당하려면 경제회복이 급선무라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엔화 가치가 지금보다 더 떨어지면 미국의 정책방향도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연준이 긴축정책을 예고하는 반면 일본은행과 ECB는 추가 양적완화를 준비하면서 달러화가 더 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때문에 강달러의 부작용에 글로벌 경제가 타격을 입으면서 결국 미 경제도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경고가 속출하고 있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전 핌코 최고경영자(CEO)는 7일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엇갈리면서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지만 정책 당국자들은 강달러의 리스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과도한 환율 변동성은 그 자체로 경기회복에 큰 위험요소"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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