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다보스가 빈부격차를 걱정하는 이유

이학인 국제부장


매년 이맘때면 스위스의 휴양도시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이 세계인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자본주의자들의 향연, 경제올림픽 등의 별칭이 붙은 이 포럼은 세계 지도자급 인사들의 교류의 장으로도 유명하다. 컨퍼런스장은 물론 호텔 로비나 바에서 세계적인 인사들과 스스럼없이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널려 있다. 이 때문에 포럼에 정식으로 참석하는 것 자체만으로 국제적인 성공을 인정받는 징표가 되기도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40여개국의 정상과 기업인, 학자 등 2,500여명이 참석한다.

세계를 움직이는 거물들의 집결장소가 되다 보니 다보스포럼은 글로벌화의 열풍이 불었던 지난 1990년대에는 반세계화 시위의 표적이 되기도 했으며 비판론자들은 참석자들을 일컬어 '눈 속의 살찐 고양이(fat cat on snow)'라고 폄하했다.


21일부터 시작되는 올해 포럼의 주제는 '세계의 재편(Reshaping of the World)'이다. 2008년 터진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된 마당에 위기 이후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WEF는 앞으로 세계경제의 체계에 위협이 되는 요인으로 소득격차를 지목했다.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청년실업이 늘어나고 경기 회복의 과실이 소수의 부자에게 집중되면서 확대된 빈부격차가 사회불안의 진앙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았다.

분배 둘러싼 갈등 수면위로 떠올라

WEF는 2012년에도 금융위기 이후의 세계와 관련해 '거대한 전환:새로운 모델의 형성(The Great Transformation:Shaping New Model)'이라는 포럼 주제를 내건 바 있다. 하지만 주제와 달리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세계 최상위 0.1%들의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무대라고 할 수 있는 다보스포럼이 2년 만에 비슷한 주제를 잡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초부터 세계 곳곳에서 최저임금 인상 요구가 빗발치면서 부의 재분배를 둘러싼 갈등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관련기사



부의 집중은 선진국도 예외가 아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세계의 평균 실질임금 상승률(중국 제외)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0%대에 머물러 있고 선진국인 미국과 영국은 마이너스 상태다. 뉴욕의 주가가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지만 수많은 미국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수천만명이 최저생계 수준에서 허덕이고 있다. 눈치 빠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를 정치이슈화해 최저임금 인상 카드를 빼 들었다.

지난해 말 프란치스코 교황은 규제 없는 글로벌 자본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해 주목을 받았다. 교황은 84쪽짜리 '교황 권고(Apostolic Exhortation)' 문서를 통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인간 삶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분명한 한계를 정한 것"이라며 "오늘날 우리는 경제적인 소외나 불균형도 '하지 말라'는 범주에 넣어야 한다"고 했다. 과거 같으면 교황이 너무 왼쪽으로 치우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올 법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그의 말에 공감하며 가난한 이들의 현실문제를 고민하는 것 역시 교황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분위기다.

세계경제가 위기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과실은 소수에게 집중될 뿐 온기는 '아랫목'으로 내려갈 기미가 보이질 않으며 현실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건 당연하다. 또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세계적으로 중산층이 붕괴하면서 현재까지 인류가 개발한 가장 안전한 경제시스템이라는 자본주의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다.

중산층 두텁게 해 희망 보여줘야

한국은 어떤가.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에 자영업자는 몰락하고 있다. 청년실업률이 8%가 넘으면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현실에 좌절한다. 정부는 경기 회복의 온기가 전 국민에게 퍼져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지만 약속만으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박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내놓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나 이어 정부가 발표한 세부 추진계획에서도 정밀한 고민을 찾아보기 힘들다. 빈곤 탈출을 첫 번째 과제로 삼았던 1970~1980년대 개발연대와 지금의 경제상황은 크게 다르다. 갈수록 극단화되는 사회를 통합하고 중산층을 육성해 중간을 두텁게 하는 한편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방안을 찾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다보스포럼에 간 인사들이 제대로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leejk@sed.co.kr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