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디지털시대 新춘향전,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설성경 연세대 명예교수가 전하는 춘향전의 비밀

15일 명덕여중서 열린 고인돌 강좌 '한국고전의 비밀스런 탐독'

설성경(사진) 교수가 18세기에 발간된 목판본 춘향전 고서를 명덕여중 학생들에게 소개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고전 춘향전에 담긴 메시지를 강의로 풀어나갔다./사진제공=백상경제연구원

“춘향전은 책방도령 이몽령과 남원 기생의 딸 성춘향의 러브스토리가 전부는 아닙니다. 이 작품은 세대간, 지역간 갈등을 통합해나간다는 큰 메시지가 담겨있어요. 순수한 청춘남녀의 러브스토리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로미오와 줄리엣과 닮은 점이 있지만 두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비극이 아니라 서로 약속을 지킨 춘향과 몽룡이 위기를 극복하고 화합해 나간다는 점에서는 한 차원 더 높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지난 15일 명덕여중 음악실에는 50여명의 학생들이 학기말 시험을 마치고 서울시교육청 강서도서관에서 준비한 ‘고인돌(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 강좌 ‘한국고전의 비밀스런 탐독’ 첫 강의를 듣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어수선할 것으로 여겼던 강의실 분위기는 온데 간데 없고 학생들은 설성경(사진) 연세대 명예교수의 춘향전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서울시교육청과 본지 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기획하고 롯데그룹이 후원하는 고전인문학 아카데미 ‘고인돌’ 2기는 철학·문학·역사 등 인문학의 본령을 아우르면서 미술·신화·경제학 등으로 외연을 확대해 나가는 융복합적인 인문학 강좌로 구성, 21개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곳곳에서 잇따라 열렸다. 이날 시작한 설 교수의 강좌는 지난 7월부터 시작한 고인돌 대장정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마지막 강좌이기도 했다.


“월매와 춘향과의 옥중 대화에서 우리는 세대 간의 갈등을 읽을 수 있어요. 이도령이 한양으로 가고 홀로 남은 춘향이 새로 부임한 남원 부사 변학도의 수청을 들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바람에 옥에 갇히게 되지요. 옥에 갇힌 춘향을 바라보며 늙은 기생 월매는 그냥 눈감고 수청을 들고 편하게 살라고 권하지요. 하지만 춘향은 변부사의 호된 곤장을 맞아가면서도 이도령과의 약속을 끝내 지켜냅니다. 춘향과 몽룡의 실제 나이는 여러분 또래인 16살입니다. 순수성을 지켜내려는 신세대와 보수적으로 변하게 되는 기성세대 간의 갈등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어요. 여러분도 부모님과의 갈등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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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교수의 강의는 고리타분하게 여기기 쉬운 고전의 탐독에 그치지 않았다. 고전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학생들에게 알려주는 데 더 집중했다. 나이가 들어도 늘 깨어있는 그래서 신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설 교수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춘향은 시대를 앞서간 여성이었습니다. 굳은 절개는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장점은 충분히 살려나가면서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지혜로운 여성이었지요. 여러분도 현재 자신이 처한 위치를 파악하고 자신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합니다.”

설 교수의 강의는 춘향전이 과연 작자 미상일까에 대한 주제로 옮겨갔다. “이렇게 탄탄한 서사구조로 전개되는 춘향전이 저잣거리에 떠돌아다니던 이야기를 짜깁기해 놓은 것일까요?” 질문을 던지자 학생들의 눈이 금세 동그래졌다. 30년 이상 춘향전을 연구해 온 노학자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지금부터는 실제 기록을 근거로 한 연구결과입니다. 인조때 남원 부사를 지낸 성안의의 아들 성이성의 스승인 산서 조경남이 춘향전의 저자입니다. 그 근거를 사료연구를 통해 찾아냈지요. 산서 조경남이 제자를 모델로 쓴 소설이 바로 춘향전입니다. 이몽룡이 실제 인물이고 춘향이 가상의 인물이라는 게 제 연구의 결과입니다. 성이성이 후에 암행어사가 되어 남긴 호남암행록(湖南暗行錄)에 이몽룡과 닮은 데가 많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울대에서 출간한 ‘춘향전의 비밀’에 이같은 연구 성과가 잘 정리가 되어있어요.” 학생들은 그저 신기하다는 눈길로 춘향전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설 교수는 원전 춘향전이 시대를 거듭하면서 다양한 형식으로 재구성되어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소개하면서 학생들에게 새로운 춘향전의 저자가 될 수 있다는 용기를 전했다. “춘향전은 그 동안 시·소설·영화·드라마·판소리·창극·발레·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으로 탄생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그 주인공입니다. 고전은 죽은 학문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새로운 창의성의 모티브가 되는 원동력입니다. 춘향전으로 세계인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그렇다면 고전을 제대로 읽어야겠지요?” 학생들의 우렁찬 “네” 소리와 함께 강의가 마무리 되었다. 한국고전의 비밀스런 탐독은 구운몽, 별주부전, 홍길동전 등을 주제로 19일까지 계속된다.

이 학교 강민경 국어교사는 “학생들이 고전이라 하면 제대로 읽기도 어렵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이번 강좌를 듣고 재미와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 무엇보다도 보람이 크다”며 “지역의 공공도서관에서 이렇게 좋은 강좌를 학교에 마련해 주어 방학을 앞둔 학생들이 소중한 체험학습의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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