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중소기업 정책은 산탄총'
전문가들은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이 정확한 목표물을 조준하게는 게 아니라 무분별하게 흩어져 나가는 산탄총처럼 지원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고 진단한다. 대통령이 나서 한마디 하면 산업ㆍ금융 등 모든 관계부처가 지원책을 경쟁적으로 마련하는 식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단순한 메커니즘을 알고 있는 일부 부실 중소기업들은 매번 교묘하게 혜택을 받아먹으며 좀비 기업으로 연명하고 있다. 이는 경제규모가 커져도 50여년간 변하지 않은 모습이다. 익명의 한 관계자는 "무차별 지원이 이뤄지는 가운데 맞으려면 맞고 옆에 잘못 맞아도(지원이 잘못되더라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러한 비효율적인 지원은 오히려 중소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가경제의 허리인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여전히 취약한 상황이다. 중소업계의 양극화, 즉 대기업 1차 협력업체와 2ㆍ3ㆍ4차 협력업체의 양극화, 양질의 일자리 부족 문제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차기 정부에서는 정확하게 조준해 저격하는 '스나이퍼' 정책으로 경제생태계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관계자는 "업종이나 유망성에 대한 고려 없이 형평성 차원에서 이뤄지는 예산지원이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는 형태의 지원을 지양하고 중기 자생력 제고에 포커스를 맞출 시기"라고 역설했다.
◇위장중기 논란으로 성장 꺼려="단번에 세제ㆍ금융 지원이 없어지게 되는데 누가 중소기업에서 벗어나려고 하겠습니까." (A사 대표)
우리 중소ㆍ중견업계의 현실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사업 초기부터 정부의 각종 지원에 익숙하다 보니 기업이 커져도 지금까지 받아온 혜택만 먼저 생각하는 모습이다. 중기에서 제외될 경우 법인ㆍ취득세 등 세제혜택을 받을 수 없고 정부 공공조달시장에서 중기 간 경쟁품목으로 지정된 195개 품목에 대해 입찰할 수 없다.
실제로 중소기업에서 중견업체로 크기도 힘들고 어렵게 중견기업이 되더라도 대기업으로 성장하기 힘드니 차라리 중기로 남아 혜택이나 받으려는 '피터팬 신드롬'에 빠진 업체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 기업을 분할해 무늬만 중소기업으로 사업을 하는 위장중기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사무용 가구 1위 업체인 퍼시스와 관계사인 팀스. 퍼시스는 조달시장 참여를 위해 지난 2009년 교육용가구사업 부문을 인적분할해 팀스를 설립했다. 3월 국회에서 판로지원법 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내년부터 입찰참여가 제한되지만 성장을 꺼리며 보호막 속에만 머무르려는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많은 중견기업들이 매출액 1,000억원대 및 3,000억원대 구간에서 다시 성장이 정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03년 매출액 1,500억~5,000억원 구간 264개 기업 중 54.5%(144개)는 해당 구간에서 성장이 정체돼 있다. 21.6%(57개)는 매출액 1,500억원 미만으로 퇴보했다. 400억~1,500억원 구간 312개 기업 중 65%(203개)가 성장 정체 또는 매출이 감소했다.
◇경쟁과 보호, 투트랙으로=전문가들은 중소기업에 대해 경쟁과 보호라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하는 정책을 세우되 확실하게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벤처기업이나 혁신형 기업은 경쟁을 붙여 성장 가능성이 높은 업체를 선택적으로 키우는 동시에 소상공인이나 재래시장 등 시장 자체가 축소되지만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은 골목상권 보호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쟁해야 할 부분과 보호해야 할 부분을 분명히 나눠야 퍼주기식 지원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성장과 보호를 동시에 추구하면서도 성장에는 인센티브를 주고 양극화를 줄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필요한 업체에 제때 지원하는 맞춤형 정책과 함께 반대의 경우 과감히 축소하는 지원 전략화와 효율화도 요구된다. 이제는 중소기업 정책도 선택과 집중이 더욱 필요한 시기라는 의미다. 그래야 닫혀 있는 한국경제의 성장판을 열어 글로벌시장에서도 경쟁력 있는 중소ㆍ중견기업을 많이 육성할 수 있다.
윤창현 금융연구원장은 "현재 중소기업 정책이 공정ㆍ평등을 중시하는 형평성 위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어 효율성 측면에서 본다면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며 "중소기업은 보호막이 있을 때 현실에 안주하거나 즐기지 말고 빠른 자구노력으로 세계시장 개척 등 실력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기 자립노력 배가해야=정부의 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 정책을 보다 세밀하게 추진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최근 2년간의 동반성장은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고 상생문화를 확산시킨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대·중기 동반성장 생태계 조성의 기틀이 마련됐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지나치게 중기의 보호막을 견고하게 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중기적합업종 제도 등으로 그 영역에서만 머무르려는 움직임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중기의 자생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 한층 강화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주현 산업연구원 중소벤처기업실장은 "외적인 환경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도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기술개발과 혁신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