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거래시간 30분 더 연장했지만… 정유사는 매도 주문 아예 없어

정유사-주유소 호가 안맞아 매매 적어 <br>정유주는 되레 상승 “성급한 시행”지적도


국내 정유사와 주유소가 온라인으로 기름을 팔고 살 수 있는 석유전자상거래가 문을 열었다. 하지만 첫 날부터 양측간의 기대 수준이 달라 거래 성사가 극히 미미했다. 석유전자상거래가 기존 석유 유통가격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는 될 수 있겠지만 실제로 기름값 인하로 이어지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다.

3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석유제품 현물전자상거래 시스템이 가동됐지만 전반적으로 한산을 모습을 보였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 S-Oil,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를 비롯해 수출입업자와 대리점, 주유소들이 플레이어로 참여했지만 서로 매매 호가가 맞지 않아 거래가 성사되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

정유사는 오프라인의 일반 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보다 크게 싸지 않게 호가를 부른 반면 주유소들은 보다 싼값을 원했기 때문에 거래가 체결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더구나 전국 1만3,000여개의 주유소 가운데 전자상거래에 참여한 곳이 100곳에 불과한 점도 첫날 흥행에 실패한 요인이다. 거래소측은 급기야 거래시간을 당초 오후 4시에서 30분 더 연장하기도 했다. 치솟는 기름값을 잡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온라인 석유시장에 첫날부터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현재 서울시내 보통휘발유 판매가는 지난 4일 리터당 2,000원대를 돌파한 후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경기도의 한 주유소 관계자는“국내 기름값 유통 구조를 볼 때 온라인이라고 하더라도 그다지 싸게 사오기 힘들 것 같아 거래에 참여하지 않았다”며 “시행초기인 만큼 일단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석유전자상거래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인터넷을 통해 자동차용 휘발유와 경유 192개 종목을 매매하는 시스템이다. 정부가 정유사들이 오프라인 시장에서 누려온 독과점적인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온라인 매매경쟁구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시행 첫 날부터 차려놓은 밥상에 손님이 없어 파리만 날리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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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이날 부산의 한국거래소 본사에서는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과 김봉수 한국거래소 이사장, 허남식 부산시장을 비롯해 정유회사 사장단 등 업계와 정부부처 관계자들이 대거 모여 개장 축하행사를 벌였다. 하지만 정작 거래는 한산한 ‘무늬만 개장식’을 한 꼴이 되고 말았다.

한국거래소와 지경부 관계자들은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면 국내 수급 상황이 반영된 공정한 가격형성을 통해 유가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면서도“예상과 달리 첫날부터 거래가 없어 난감하다”고 말했다.

이번 시스템 구축에 50억원 이상을 투입한 한국거래소는 시장활성화를 위해 당분간 거래수수료도 받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앞날이 밝지만은 않아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기름값 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주 정유사들의 전국 평균 휘발유 공급가는 리터당 1,956원(세후)에 달했다. 그리고 주유소의 평균 판매가격은 공급가격에 마진을 부쳐 2,026원에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날 전자상거래가 선보였지만 정유사들이 1,956원보다 크게 낮은 가격대를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관측됐다.

이처럼 석유전자상거래 시장이 첫날부터 한산한 모습을 보이면서 정유주들의 주가는 되레 올랐다. SK이노베이션이 1.85% 올랐고 S-OIL도 0.45% 상승했다. GS는 3.34%나 급등했다.

이는 결국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될 경우 정유사들의 마진 축소로 이어지면서 정유주들의 주가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안상희 대신증권 연구원은 “제반 여건이 충분하게 준비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성급하게 문을 열다 보니 전자상거래 시행에 대해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한 상황”이라며 “시스템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혼합판매 비중이라든지 주유소의 상표권이나 매출채권 등 고려해야 할 제도적 문제가 많아 앞으로 난항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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