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신흥국 위기와 한국의 21세기

옐런 발언 중국 실적 힘입어 신흥국 주가 반등분위기지만<br>위기는 질긴 다년생 잡초와 같아 국제 공조없이는 성장 불가능<br>안보환경 변화로 긴장 높아져 대화 주도하는 기능 맡아야 21세기 변영의 길 트인다


 권홍우 논설실장

 


 옐런 발언·중국 실적 힘입어

 신흥국 주가 반등 분위기지만

 위기는 질긴 다년생 잡초와 같아

 국제 공조 없이는 성장 불가능

 안보환경 변화로 긴장 높아져

 대화 주도하는 기능 맡아야

 21세기 번영의 길 트인다


  역시 세다. 추락하던 신흥국들의 주가와 통화가치가 12일 한꺼번에 올랐다. 재닛 옐런 발언의 영향이 컸다. 당분간 이완적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한다는 말에 미국과 유럽 증시도 동반상승했으니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힘이 역시 세긴 세다. 특히 ‘전임 버냉키 의장의 정책을 지속할 것’이라는 옐런의 발언을 신흥국 시장에서는 긍정적 신호로 여기는 것 같다. 미국의 페이퍼링(양적완화 축소)과 더불어 신흥국 위기의 또 다른 원인이었던 중국의 경기악화 우려를 비웃는듯한 깜짝 무역수지도 주가 반등에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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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신흥국 위기는 가셨을까. 한국은 안전한가. 자신할 수 없다. 물론 긍정적 전망도 있다. 미 연준은 11일(미국시간) 의회에 제출한 금융정책보고서에서 ‘한국은 경제 토대가 탄탄하고 신흥국 가운데 가장 안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페이퍼링은 이제 스타트라인을 조금 지났을 뿐이다. 위기가 언제 급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2003년 작고한 찰스 킨들버거는 명저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에서 금융위기를 ‘계속 피어오르는 질긴 다년생 풀’에 비유했다. 잡초처럼 언제든 위기가 터질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위기의 끈질긴 생명력과 반복성 이상으로 두려운 것은 국제 금융공조의 지속성 여부다. ‘통화정책 국제공조가 무너졌다’는 라구람 라잔 인도 중앙은행 총재의 지난달 말 발언이 머리를 짓누른다. 최초의 국제공조는 1890년 베어링 위기에서 나왔다. 기묘하게도 오늘날 신흥국 위기의 몸살을 가장 심하게 앓는 아르헨티나가 위기의 진원지였다. 고수익을 쫓아 아르헨티나 토지채권에 과다 투자한 베어링의 예상 손실액이 너무 커 영국의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조차 막막하던 상황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프랑스와 러시아로부터 뜻밖의 지원이 신속하게 이뤄진 덕에 영국은 베어링도 구하고 재앙도 피해 나갔다.

 영국은 이후 적극적인 해외자금 운용으로 국제금융의 리더십을 유지했으나 문제는 제 1차세계대전 이후. 국력이 떨어지고 돈이 없어 리더십을 지킬 수 없었다. 영국을 대신할 만한 위치에 올라선 미국은 리더십 확보에 뜻이 없었고 프랑스는 독일에 대한 원한에 사무쳐 국제공조에 나서지 않았다. 1929년 뉴욕발 주가대폭락으로 야기된 세계대공황에서도 국제적 금융협력은 논의만 무성했을 뿐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을 중심으로 보호무역주의가 고개를 들고 각국이 경쟁적으로 수입관세를 올려 불과 3년 만에 세계무역액이 대공황 이전에 비해 70.8%나 줄어들었다. 더욱 깊어진 대공황의 상처가 치유된 것은 전쟁 덕분이다. 제 2차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의 병기창으로 떠오른 미국에서 완전고용과 설비 풀가동이 달성되며 길고 긴 대공황도 막을 내렸다. 국제공조가 있었다면 전쟁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세계가 글로벌 위기를 벗어나려면 예전처럼 전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없지 않지만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다. 전면전이라면 핵미사일 발사 단추가 눌러지는 순간 지구의 생명이 끝장나고 제한적 국지전이라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미국이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가장 큰 이유도 한주먹감도 안 되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 탓이다. 오늘의 한국은 어느 나라와 비교해서도 답답한 처지다. 신흥국 위기도 위기이거니와 외교 안보상황이 좋지 않다.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과 최대 경제파트너인 중국의 사이에 끼어 있다. 경제는 물론 국제정치적으로도 대화와 타협, 국제공조 분위기가 유지돼야 한국의 길이 열린다. 중국 출신 재미사학자인 황런위(2000년 작고)는 ‘자본주의의 역사와 중국의 21세기’에서 중국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못한 이유를 잘못된 인식과 제도의 누적으로 꼽았다. 한국의 21세기는 평화와 공조에 전력을 투구해야만 가능하다. 당장 동북아시아의 대화 분위기를 앞장서 조성할 필요가 있다. 7년 만에 열린 남북고위당국자접촉도 이런 맥락에서 소망스럽다.

 국내에서는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라잔 인도중앙은행 총재가 시카고대 교수이던 2010년 서울경제신문이 주최한 서울포럼에 기조연설자로 참석해 강조했던 대목이 떠오른다. ‘사회 안정망을 확충하고 양극화 현상을 해소해나갈 때다. 균형성장을 이룩하면 단기간에 부국반열에 오른 한국의 저력이 이어질 수 있다’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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