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를 조용히 있다가 지난해부터 뉴욕 나들이를 다시 하게 됐다. 뉴욕현대미술관(MoMA)를 새로 짓고 처음이니까 꽤나 세월이 지났다. 지난해 이맘때 MoMA에서는 마티스의 젊은 시절 한토막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위층에서 아래층 홀을 내려다보니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서울에서 흔히 보는 데모 군중과도 같은 인파였다. MoMA는 전보다 더 활기찬 모습이었다. 세계의 어느 미술관, 어느 박물관보다 북적였다. 모두가 그림 보러 오는 사람들로 매일매일 그럴 터인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술 분야 제도적 뒷받침 시급 100년 전의 마티스 그림인데 내가 보기에는 오늘날의 그림들을 압도하는 것 같았다. 종합성ㆍ보편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늘날의 그림들이 너무도 세분화되는 것일까. 부분을 너무 확대하다 보니 큰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개성, 새로운 것 등에 매달리다 본연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있는 것 아닐까. 마티스를 오랜만에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안내장에 한글이 쓰여 있는 것을 보면서 새삼 우리나라의 국력을 실감했다. 지난 1970년대만 해도 세계여행을 다닐 때 북한이냐 남한이냐를 자주 물어서 어떤 이는 아예 일본인 행세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전세계에 퍼져 있는 우리나라 유학생 수를 다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일 것이다. 휘트니미술관에서는 지난해에도 그렇고 올해도 그렇고 영상미술이라 할지…. PSI라는 데도 그랬다. 경향의 차이는 있었지만 과학적인 기술과 미술과의 접목 같았다. 그런 분야에서 예술가를 찾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뉴욕은 역시 세계 미술의 중심축이었다. 과거에 파리로 모였던 에너지가 지금은 뉴욕으로 몰리고 있다. 새로운 미술이 그 곳에서 나오고 예술성의 자리매김이 뉴욕에서 이뤄지고 있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어떤 회오리바람 같은 것을 느낀다. 하지만 이를 위해 뉴욕이 예술 분야에 어떤 제도적 뒷받침을 하고 있는지를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필자는 언젠가 미술인들의 모임에서 "아시아의 미술을 세계 미술에서 따로 뗄 수는 없지만 아시아의 미술을 움직이는 축이 있다면 서울 아닐까"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서울은 가장 개방적인 도시이고 서양과 그 밖의 모든 것, 받아들일 것은 다 받아들인 곳이 아닌가 싶어서다. 한국 젊은이들만큼 세계를 열어놓고 다 보고 있는 이들이 없다. 배울 것을 다 배워서 이제는 내 일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안데르센 동화의 '미운 오리 새끼'를 상기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오리들에게 구박을 받고 키워주던 농가를 뛰쳐나와 힘들게 겨울을 나고 하늘을 나는 백조가 된 자신의 본모습을 확인할 때가 아닌가 싶다. 식민지로부터 해방되고 또 불운하게도 남북의 전쟁을 겪으면서 눈치코치 따질 여지조차 없는 총력으로 60년을 달려왔다. 전쟁을 통해 본의 아니게 외국의 문물이 한꺼번에 몰려왔고 우리는 열심히 수용하고 소화했다. 주체로서의 미술세계 개척해야 4ㆍ19라는 정의의 분출도 경험했다. 전국민이 하나로 마음을 합쳐 불의를 청산했다. 그 같은 일은 세계 역사에서 오직 우리나라에만 있었다. 그리하여 50년. 오늘의 젊은이들은 새로운 삶을 독자적으로 개척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국은 예로부터 대륙의 변방에서 항상 외국의 영향권에 있었다. 그러다가 19세기 큰 학자가 한 사람 나와 화가 터너를 내세워 인상파 사상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그 뒤 또 한 명의 큰 학자가 나와 영국 현대미술을 세계 미술의 정상 반열에 올려놓았다. 지금 우리가 정신을 가다듬어 외국의 전위예술을 뒤따르는 일을 접고 주체로서의 나를 세워야 할 시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