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시 10회로 자신의 논리에 대한 고집이 대단하며 업무추진력이 뛰어나다는 평. 자기 생각을 관철시키고야마는 현란한 화술로도 유명하다.재정경제원 시절 뒤로 밀려나 있다가 외환위기를 계기로 뛰어난 협상능력을 인정받아 국민정부 출범초기 초대 재정경제부 차관으로 발탁된 데 이어 1년여만에 산자부장관으로 중용됐다.
71년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세제·증권분야에서 실무를 익힌 뒤 주영(駐英)재무관, 경제협력국장, 국제금융국장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95년 1급 승진후 재경원 기획관리실장, 차관보를 역임했다. 부가세 도입시 실무를 맡아 이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대(對)러시아 경협차관 상환협상을 성공시켜 대외협상능력을 인정받았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218억달러 단기외채 만기연장협상, 40억달러의 외평채발행을 성공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부인 이명덕(李明德)여사와 2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