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정책

[신년 인터뷰]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

성장잠재력 갉아먹는 쇼터미즘 극복해야 中 추격 물리칠 것



금융산업 규모 키우기보다 국제금융 틈새시장 겨냥을

강의실과 금융현장은 떠났지만 노교수의 머릿속은 아직도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다. "한국은 쇼터미즘(단기실적주의·short-termism)을 극복하지 못하면 중국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국내총생산(GDP)의 일정 부문을 넘어서는 금융산업의 확장은 경계해야 한다" "장기어젠다를 설정하지 않은 복지구호의 과잉은 문제다" "주인 없는 민영화는 관치만 확장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등 그의 진단은 여전히 날카롭고 명쾌했다.출범 1년이 다 돼 가는 새 정부에 대한 고민이 깊어서였을까. 김병주(75·사진) 서강대 명예교수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개인 사무실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가경제'에 대한 많은 진단을 내놓았다. 김 교수는 경제 전반에 독버섯처럼 퍼져 있는 단기실적주의를 고쳐야 할 우선 대상으로 제시했다. 그는 "정부와 공공기관 등에서 단기실적을 중시하는 경향이 높다"면서 "이는 민간섹터에까지 영향을 미쳐 국가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고 말했다. 또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한국 위상에 대해서는 "현실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룰세터(rule-setter)보다는 룰테이커(rule-taker)가 한국금융산업의 지위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올해부터 시작되는 미국 양적완화 축소에 대해서는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강하고 외환 보유액도 충분하기 때문에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진단하면서도 "금리인상 요인으로 작용해 소비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미리 대비할 필요는 있다"고 조언했다.


후세보고 정책 설계 필요

19세기까지 후진국에 불과했던 독일은 유럽의 경제 강국으로 부상했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이를 가능하게 한 원천 가운데 하나로 '세대 간 분업(Division of labour)'을 꼽는다. 1980년대 학번이 진행하다 완성하지 못한 업무를 1990년대 학번이 뒤를 이어 매듭짓는 식이다.

김 교수는 "독일은 한 정부가 임기 안에 할 수 없는 큰일은 여러 세대가 분업을 통해 목표를 달성한다"면서 "이 때문에 정부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국가에 이익이 되는 쪽으로 정책을 설계하고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경 제강국이 되고 있는 중국도 사례도 꺼냈다. "중국도 집권하면 기간이 10년입니다. 5년인 우리나라에 비해 두 배나 깁니다. 더욱이 물러나도 한동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계획을 갖고 부국의 전략을 만들 수 있는 힘입니다." 시선을 한국으로 돌렸다. 노교수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장기어젠다를 갖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모습이 많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입니다. 자연스럽게 단기성과에 얽매입니다. 문제는 파생하는 부작용이 많다는 것이에요. 공공기관 최고경영자(CEO)들이 자연스럽게 물갈이되고 공공섹터의 영향을 받아 민간도 비슷해집니다. 긴 안목의 계획이 사라지는 것이지요." 공공섹터는 물론 민간섹터 역시 재임기간 동안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무리수를 두게 되고 일관성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예를 더 들어볼까요. 미국 아이비리그의 유명 대학인 프린스턴대는 1746년 세워졌어요. 놀라운 것은 260여년 동안 총장이 20명밖에 안 된다는 점입니다. 총장이 교육 철학대로 대학을 이끌어가려면 최소 10년 이상 재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김 교수는 "한국이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머지않아 중국에 따라 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근거는 이랬다. 그는 "임기 내에 실적을 달성하겠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긴 안목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면서 "세대 간의 분업 마인드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GDP 대비 금융비중 확대는 위험

'금융산업에도 삼성전자가 출현해야 한다.' 한국 금융의 발전방향을 두고 흔히 밝히는 방향이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국제 금융 시장에서 글로벌 금융사들과 당당히 경쟁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깔려 있다. 지난 정부에서는 한국이 금융허브가 돼야 한다는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이상일 뿐'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냉정하게 현실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 금융 시장에서 한국은 이미 정해진 규칙을 충실히 따를 수밖에 없는 룰 테이커(rule-taker)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냉혹한 국제 금융 시장의 현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한국 금융은 세계를 호령할 정도로 성장할 가능성이 없는 것일까. "문제가 됐던 리보금리 담합 주도는 누가 했습니까. 세계금융의 룰을 만드는 대형금융회사, 즉 SC나 HSBC·JP모건 등이 했어요. 국제 금융 시장의 플레이어들이 조작한 것인데 국내 금융회사들이 그 틈바구니에 낄 수 있을까요. 쉽지 않습니다." 자칫하다가는 그들의 먹잇감만 될 뿐이라는 얘기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를 국제 금융 센터, 국제 금융 허브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정글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국제 금융 시장의 질서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면서 "한국은 국제 금융 시장에서 메이저 플레이어가 될 수 없다. 차라리 국제 금융의 니치 마켓(niche market·틈새시장)을 노리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금융의 규모를 무조건 키우는 전략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삼성전자 같은 규모의 대형 금융회사를 육성하는 것 자체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삼성전자 규모의 금융회사 키우는 것은) 과욕일 뿐만 아니라 금융산업의 비중은 일정 규모의 국내총생산(GDP) 내에서 관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금융이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에 불과해요. 현재는 6% 수준까지 올라갔는데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에는 과거의 수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요." 미국 역시 금융의 지나치게 비대화되면 최악의 경우 관리 불가능의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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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국내 금융회사들에 지금 중요한 것은 세계 랭킹 몇 위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금융 서비스의 질 향상과 같은 내실을 키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시에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류현진·추신수 선수가 뛰어난 활약을 펼치자 한국 야구의 위상이 올라갔다"면서 "국제 금융 시장에서도 뛰어난 인재가 배출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태국장은 우리 금융계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1,000조 가계부채 해결책은 성장

화제는 올해의 한국 경제와 국제 금융 시장으로 흘러갔다. 김 교수는 국제 금융 시장의 흐름에 대해서는 "위험요소가 많이 사라졌다"고 평가하면서도 3.9%로 예측된 GDP 성장률에는 몇 가지 우려를 나타냈다.

미국은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김 교수는 "미국은 올해는 2.4% 성장이 예상되는데 이는 2013년 1.6%보다 0.8%포인트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럽연합(EU)은 독일이 금융위기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면서 당분간 돌발사태는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중국도 올해 7% 중반대 성장이 예상되는 등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본이 아베노믹스의 효과가 약화되면서 주춤하겠지만 "국제 금융 시장 전체적으로 보면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제 금융 시장과는 달리 국내 경제는 낙관만 하기에는 힘들다는 게 그의 분석. 김 교수는 "미국의 양적완화가 축소된다는 것은 그동안 미 정부가 돈을 풀어 샀던 국공채와 주택 저당채권 등의 규모를 줄인다는 의미인데 그러면 장기채권 값이 떨어지고 금리는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이 내놓은 경제 전망을 보면 소비 부문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비판했다. 금리가 오르면 소비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기 마련인데 올해 소비 성장률이 3.9%로 전년보다 배 이상 늘어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3% 후반대의 성장률을 예측할 때 소비증가율이 2013년 1.9%에서 3.2%, 설비투자가 -1.2%에서 5.3%가량 늘어나는 것으로 돼 있던데 과연 예측이 맞을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과도한 가계부채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성장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상기시켰다. 그는 "1,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금리 인상과 같은 정공법을 쓰면 부작용이 크다"면서 "규모 자체를 떨어뜨리기보다는 증가속도를 완화시키는 게 현실적인 방법이다. 경제 성장을 통해 가계부채가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상대적인 비중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규제 잣대 국내시장에만 머물러

성장을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기업의 투자다. 투자가 늘어야 고용도 늘고 소비도 증가해 성장이 뒤따르기 때문. 김 교수는 그러나 "기업인들의 의욕을 꺾고 있는 상황에서 투자가 늘어날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동반성장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대기업은 두부를 만들지 말라'는 식의 규제를 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규제예요. 이런 경영 환경에서는 정주영과 이병철 같은 기업가가 나올 수 없습니다. " 이미 우리 대기업들은 해외로 나가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는데 동반위나 공정위가 대기업을 규제하는 잣대는 국내 시장에만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정부의 시장 규제가 심한 편에 속한다"면서 "기업들이 덩치를 키워 해외로 나가려는데 국내에서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의 투자 의욕을 살릴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여러 차례 투자 활성화 계획을 내놓았고 금리도 낮은 상황이지만 기업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어요. 투자는 불확실성과의 싸움인데 우리 경제 전망이 그만큼 불확실하다는 증거죠. 정부가 수십 가지의 투자 활성화 대책을 내놓는 것보다 기업들이 스스로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구조조정의 방식이나 민영화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김 교수는 "주인 없는 한국식의 민영화는 문제가 많다. 결국 관치만 확장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면서 "지배구조를 안정시킬 수 있는 그런식의 민영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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