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담합, 건설사에만 돌 던질 일인가


1970~1980년대 중동 건설현장을 경험했던 전직 건설사 임직원들을 만나보면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쉽게 엿볼 수 있다. 슬쩍 젊은 시절의 해외 현장 얘기를 꺼내 물으면 열에 아홉은 "그때는 말이지"로 시작하는 무용담이 펼쳐진다. 열사의 땅에서 겪었던 어려움, 그 역경을 뚫고 이뤄낸 성과를 설명하는 목소리에는 힘과 열정이 넘친다.

한때 한국 경제 성장의 역군으로 불리던 건설업체 임직원들의 어깨가 요즘 무척이나 좁고 처져 보인다. 지난해 주요 건설사들은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크고 작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에서 대규모 적자를 낸 데다 해외에서 수주한 대규모 프로젝트가 큰 손실을 입은 탓이다.


하지만 정작 이보다 이들의 어깨를 더 처지게 만드는 것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담합과 비자금 관련 소식이다. 심지어 일부 건설사 임직원은 주변에 "○○건설 다닌다"고 말하기도 조심스럽다며 자조 섞인 한숨을 내뱉는다.

요즘 공정거래위원회 보도자료의 단골손님은 건설사다. 심지어 올해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대부분이 건설사 몫이라고 한다.

봇물을 이루는 담합 적발에는 '리니언시(leniency)'도 한몫했다. 담합 행위를 자발적으로 신고한 기업에 과징금을 감면해주는 제도다. 1순위로 자수하면 과징금을 100%, 2순위는 50%를 깎아준다. 1, 2순위 모두 고발 대상에서 제외된다.

MB때 독려했던 4대강 등 집중 조사

박근혜 정부 들어서면서 4대강살리기 사업과 경인운하 등 대형 국책사업에 참여했던 건설사에 대한 담합 조사가 잇따르면서 가뜩이나 궁지에 몰린 업체들이 리니언시를 통해 피해를 줄여보려고 나서면서 적발 건수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건설업계로서는 그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버린 상황이다.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곧바로 뒤따르는 것은 검찰의 수사다. 담합과 비자금 조성 자체가 불법이니 당연히 예고된 수순이다. 모 건설사의 경우 담합과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만 20차례 가까이 이뤄졌다고 한다. 한 번만 이뤄져도 회사 전체가 발칵 뒤집힐 압수수색을 밥 먹듯 받다 보니 해당 부서 직원들은 이제 체념 상태라고 한다. 일부 부서는 반복되는 압수수색에 정상적인 업무가 어렵다는 얘기도 들린다.


또 다른 대형 건설사의 한 임원은 '공정위'와 '검찰'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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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합은 명백한 불법 행위다. 그런데 담합이라는 원죄를 지은 건설업체들에 대한 시선 못지않게 이를 적발해내는 검찰이나 공정위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곱지 않다.

현재 담합에 대한 공정위와 검찰의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프로젝트는 대부분 이명박 정부 당시 추진된 대형 국책사업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4대강살리기와 경인운하 사업이다. 그런데 4대강살리기 사업만 해도 이미 이명박 정부 당시 담합 관련 조사가 이뤄졌지만 결론은 '문제없다'였다. 왜 똑같은 사안을 두고 당시에는 무혐의로 결론 내렸던 사안이 이제 와서 문제가 되는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더더욱 담합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정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최근 만난 한 건설사 최고경영자(CEO)는 업계에 대한 이 같은 압박에 대해 "허탈하다"고 심경을 피력했다.

그는 "대한민국을 가로지르는 주요 강의 물줄기를 한꺼번에 바꾸는 대역사를 5년 만에 해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 같으냐"고 되물었다. 내로라 하는 대형 건설사가 모두 뛰어들어도 모자라 철야작업을 밥먹듯 하면서 겨우 공사를 마쳤더니 정권이 바뀐 뒤 되돌아온 선물은 비난과 과징금, 회사 임직원의 사법처리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공정위나 검찰이 볼 때는 담합이겠지만 당시 건설사들 입장에서는 위험분산이었다"며 "업체 관계자들을 불러모아 공사 참여를 독려하며 '행정지도'했던 당사자들은 왜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느냐"는 것이다.

정권 관계없이 법 집행 엄정해야

법 집행은 엄정해야 한다. 기업이 법을 어겼다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담합은 그 자체로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는 행위로,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그렇지만 근절돼야 할 것은 기업의 담합만이 아니다. 정권의 치적을 쌓기 위해 기업을 동원하고 정권 따라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는 사법당국의 관행 역시 함께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 엄정한 법 집행자의 권위도 선다.

/정두환 건설부동산부장 dh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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