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법원 "민관공모 PF 실패 민간 탓만 아니다"

용산역세권·수원 에콘힐 소송도 영향줄듯

지자체, 출자사 증자책임 물어 계약 일방해지 유사

위약금 부담까지 떠안던 건설사 책임 공방서 숨통


국내에서 진행된 민관 공모형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이 토지를 제공하고 민간 출자사들이 자기자본이나 PF 대출 등을 이용해 개발사업에 드는 비용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주로 진행돼왔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로 대출 길이 막히면서 지자체나 공공기관으로부터 줄줄이 계약해지 통보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 판결에서 다뤄진 천안국제비즈니스파크 사업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일이 진행됐다. 천안시가 100억원 규모의 토지를 현물 출자했고 대우건설·현대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이 각자의 출자 비율에 맞춰 자기자본을 내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를 설립해 토지매입 등에 나섰지만 2008년 9월께 이른바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불리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되며 대출을 통한 자금조달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에 천안시 측은 출자사들이 유상증자를 해서 자금을 마련할 것을 4회에 걸쳐 요구했지만 민간출자사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2012년 출자사들에 사업협약 해지를 통보한 천안시는 이후 "건설 출자자들이 증자와 지급보증을 꺼려 사업이 무산됐으므로 실패 책임은 전적으로 건설사에 있다"고 주장하며 700억원 상당에 이르는 금액을 위약금조로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그러면 이렇게 좌초한 사업의 실패 책임이 누구에게 있을까. 지자체·공공기관과 민간 건설업체들은 서로 상대편에 책임이 있다며 법정다툼을 하고 있다.


이처럼 양측의 입장이 팽팽한 가운데 대전지법 천안지원이 건설사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처음으로 내놓아 주목된다. 재판부는 "천안국제비즈니스파크 사업이 무산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 같은 사업 좌초가 대우건설 컨소시엄의 중대한 귀책사유 때문이라고 보긴 어렵다"며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건설사들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상황도 있고 민간 출자사들이 사업 추진을 위해 천안시의 지분을 50%로 높일 것을 요청했지만 시가 민원 등을 이유로 계속 거절해 결국 도시개발에 필요한 토지를 확보하지 못했던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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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앞으로 진행될 용산역세권개발사업이나 수원 에콘힐 등을 둘러싼 소송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업구조나 협약 내용은 물론 민관 공모형 개발사업을 주도한 지자체가 출자사의 증자 실패를 이유로 들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일례로 총개발비만 31조원에 달해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으로 꼽히던 서울 용산역세권개발의 경우 코레일이 지난해 4월 용산개발의 시행자인 드림허브 측에 사업 해지를 통보하며 "약속한 2,500억원의 증자 의무를 민간 출자사들이 이행하지 않았기에 사업이 무산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수원 광교신도시에 2조1,000억원을 들여 백화점 등 판매시설과 공동주택, 업무·문화시설 등을 건립하기로 했던 개발프로젝트인 수원 에콘힐 사업 역시 비슷한 이유로 계약이 해지됐다. 출자사들이 지난해 6월 만기가 도래한 에콘힐 사업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3,700억원을 상환하지 못했다며 경기도시공사가 사업 협약 해지를 통보한 것이다. 출자사들은 현재 907억원의 출자금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수원지방법원이 이미 제기한 상황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재판부가 서로의 협조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민관 공모형 개발사업 구조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했기에 나올 수 있었다"며 "사업 실패에 이어 위약금 부담까지 떠안아야 했던 건설사들 입장에서는 반가운 판결이며 앞으로 책임공방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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