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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이름난 건축가 중에는 유독 김(金)씨가 많다. 작고한 김수근·김중업과 아직 현역으로 활동 중인 김종성 서울건축 명예사장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고(故) 김정철과 김정식을 빼놓을 수 없다. 형제 건축가인 두 사람은 지난 1967년 정림건축을 설립한 후 기라성 같은 선배 건축가들을 제치고 외환은행 본점 설계를 맡으면서 주목을 받았다. '사람을 위한 건강한 건축'을 지향했던 두 창업자의 건축정신은 '곧은 나무와 나무가 만나 울창한 숲을 이룬다'는 정림의 사명처럼 곧고 길게 이어져 한국 건축계에서 풍성한 숲을 이뤘다. 서울 혜화동 본사에서 만난 김진구(61·사진 왼쪽)·경민호(48·오른쪽) 공동대표는 "시대의 기술을 담아 건축의 기본에 충실한 장소와 공간을 만들어내자는 정림의 건축철학을 계속 지켜나갈 것"이라며 "무리한 사업 확장보다는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규모에서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키워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진구·경민호 공동대표는 2011년부터 정림을 이끌고 있다. 김 대표는 대학을 졸업한 1979년 정림에 입사, 30년 넘게 근무한 '오리지널 정림맨'이다. 경 대표는 대학 졸업 후 재일동포 건축가인 이타미 준의 설계사무소에서 잠시 일을 배우다 귀국해 서울건축을 거쳐 1994년 설계본부장으로 정림에 합류했다. 업계에서는 열세 살 차이가 나는 이들의 공동대표 체제가 안착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경 대표는 "김 대표를 본부장으로 모시며 다수의 프로젝트를 함께했기 때문에 호흡이 잘 맞는다"며 "회사를 안정적으로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구세대와 젊은 세대의 조화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직원이 571명인 정림건축은 이직률이 낮아 장기근속자가 많다. 건축설계 부문은 39세 이하의 젊은 건축가가 60%가량 되지만 건설사업관리(CM)와 감리 부문은 50세 이상의 시니어급 직원이 70% 가까이 된다. 건강이 뒷받침되는 한 계속 사무소에 남아 정년 이후에도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것이 정림의 비전이다.
서로 역할분담은 어떻게 할까. 프로젝트 베이스로 운영되는 건축설계사무소의 특성상 영업 등 업무가 상당 부분 겹칠 수밖에 없지만 김 대표가 주로 프로젝트 진행·관리 등 기술 파트를 맡고 경 대표는 재무와 마케팅·해외사업부문을 챙긴다. '2인3각' 경기와 같은 두 대표의 공동경영은 성과로도 이어져 어려운 업황에도 불구, 정림건축은 2012년과 지난해 2년 연속으로 1,000억원이 넘는 수주액을 기록했다. 김 대표는 "공공건축물 발주가 감소하면서 건축설계사무소들이 일감이 크게 줄어 어려운 상황이지만 정림은 민간 분야에서 꾸준히 수주물량을 확보하고 있다"며 "현시점에서 살아남는 것은 의미가 없고 건강하게 잘 살아남아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건설·부동산경기 침체로 건축설계사무소들이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림건축이 선전하고 있는 것은 건축의 본질적 능력인 설계·디자인에서 탄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림은 교육연구·의료시설과 대형 복합시설 등의 특수시설 분야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이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관과 신촌연세대세브란스병원 등 1,000병상 이상의 대형 병원은 대부분 정림의 작품이다. 마곡지구에 들어서는 이화의료원도 정림이 설계를 맡는다. 송도 연세대 국제캠퍼스와 인천대 송도캠퍼스, 대학로 한국방송통신대 대학본부 서관 등 교육연구시설도 정림의 손길을 거쳐 탄생했다.
'보수적이고 상업적'이라는 세간의 평가와 달리 정림은 새로운 분야에 앞서 진출해 노하우를 축적해가고 있다. 멀티플렉스 극장도 정림이 개척한 분야로 CGV 극장 60여곳을 설계했다. 대형 복합시설 부문도 정림이 강점을 지닌 분야다. 일산 한국국제전시장(KINTEX)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중국 선양 롯데월드, 영등포 타임스퀘어 등이 정림의 설계를 바탕으로 지어졌다.
삼성동 COEX에서 진행 중인 리모델링사업은 정림이 신성장동력으로 삼아 주력하는 분야다. 7개의 교보생명 지방 사옥과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광주 남구 종합청사의 리모델링도 진행했다. 김 대표는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서면 웬만한 땅에는 이미 건축물이 들어서 일거리가 많이 없다"며 "1970~1980년대 압축성장기에 지어진 건축물들이 노후화되면서 친환경 최첨단 오피스로 리모델링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건축가의 길로 들어선 특별한 계기는 없다고 했다. 김 대표는 집과 건물을 설계하는 건축이 옷을 입고 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익숙한 행위였다고 한다. 그는 "196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서울이 한창 개발될 때여서 자고 나면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며 "새로 지은 건물을 볼 때마다 신기하고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았던 경 대표는 가고 싶었던 미대와 가장 가까운 분야가 건축이라고 판단, 건축과에 진학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경 대표는 조형미나 예술적인 감각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행태와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당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융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설계의 역점을 둔다. 학문과 지역사회 내·외부 간의 교류와 통섭을 주요 콘셉트로 설계한 인천대 송도캠퍼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도서관을 예로 들며 "과거의 도서관은 검색기능이 주를 이뤘다면 디지털화된 오늘날에는 교류가 더 중요한 기능"이라면서 "도서관 1층에 카페와 식당을 배치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건축물과 외부환경의 관계 설정과 재구축에 좀 더 신경을 쓰는 편이다. 외적으로는 새로운 건물이 기존 건물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면서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고려하고 내적으로는 각각의 건축 공간이 기존의 고유기능을 가지면서도 서로 융합하고 상호 반응해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를 담아낼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연출한다. 지난해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은 한국방송통신대 대학본부 서관에 김 대표의 이러한 건축철학이 잘 녹아들어 있다. 그는 "대학로와 면한 부분은 필로티로 설계해 행인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며 "개방성과 함께 벽돌건물이 많은 대학로 건축물의 특성을 고려해 외벽 마감재를 적벽돌을 사용하는 등 원래 있었던 건물 같은 느낌을 갖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여타 건축설계사무소들이 신규직원 채용을 중단하거나 기존 직원을 감원하고 있는 데 반해 정림건축은 해마다 20명 안팎의 신입사원을 뽑고 있다. 정림의 직원교육은 엄격하고 체계적이기로 유명하다. 1년 차, 3년 차, 5년 차 등으로 나눠 끊임없이 훈련시킨다. 정림이 건축사관학교로 불리는 이유다. 김 대표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3년 동안 신입직원을 선발하지 않은 후유증이 지금까지 있다"며 "설계작업이 컴퓨터로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건축은 도제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더라도 계속 뽑아서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림건축이 창립 50주년을 맞는 오는 2017년에 서울에서 '건축계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건축가연맹(UIA) 총회가 열린다. 한국 건축계가 변방에서 세계 건축계의 중심부로 진입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림의 시선도 해외로 향하고 있다. 두 대표가 추구하는 해외진출 전략은 '기본에 충실하면서 똑똑하게 하자'는 것이다. 경 대표는 "설계·디자인을 잘해서 현지 발주처의 인정을 받아 건축주에게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제공하는 데 충실할 것"이라며 "철저한 현지화와 리스크 관리를 통해 전체 매출에서 해외 비중을 25% 수준으로 유지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민호 대표는 |
●김진구 대표는 |
이익 10% 기부 해비타트 봉사… 사랑은 건축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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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권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