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동십자각] 학교 주변에 귀신이 많은 이유

1990년대 들어 학교의 귀신은 두가지 방향으로 진화한다. 하나는 만화처럼 우스꽝스런 모습이다. 「만득이와 귀신」 시리즈 같은 것들이다. 꺼벙한 귀신이 만득이를 따라 다니며 「썰렁한」 사건을 벌인다. 「참을 수 없는 교육의 가벼움」에 대한 풍자다.또 하나는 친구인지 귀신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실화 같은 이야기들이다. 머리를 풀어 헤치고 입가에 피를 흘리는 귀신이 아니라,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복도를 걸어가는, 「여고괴담」같은 종류의 귀신이다. 귀신이 나타나는 장소도 다양해졌다. 긴 마루로 이어진 어두운 복도, 책상이 삐걱거리는 교실, 매일 밤 늦게 붙잡혀 있는 도서실, 불량 친구에게 두들겨 맞은 아픔이 가득찬 화장실, 개구리나 쥐를 해부하던 과학실…. 학교 전체가 귀신 소굴이 됐다. 우리 학교에는 왜 그렇게 귀신 이야기가 많은가? 왜 귀신은 죽어도 떠나지 못하고 학교 주변을 떠도는가?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의 지상 과제는 「교육」이 아니라 「졸업」이다. 졸업하지 못하면 귀신도 학교를 떠날 수 없다. 귀신도 졸업장을 받아야 안심하고 저승에 갈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참을 수 없는 교육의 무거움」으로 인한 신음이 배어 나온다. 귀신 이야기에서 우리 학교는 극단적인 양면성을 보여 준다. 햇살이 따가운 낮에는 온통 재잘거리던 교정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밤에는 귀신이 출몰하는, 을씨년스런 풍경으로 바뀐다. 학교는 우정과 추억으로 기억되는 아름다운 장소가 아니라 폭력과 집단 따돌림, 성적 비관 자살, 교사의 편애, 구타, 성희롱 같은 우울한 이야기로 가득찬 악몽의 공간이다. 우리 학교가 그만큼 소름끼치도록 잔혹한 공간으로 학생들에게 각인되어 온 것이다. 아이들은 증오와 분노로 가득차 있다. 귀신이 나오는 살벌한 학교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졸업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옆에 있는 친구도 예사롭지 않다. 교실에 남아 밤늦게까지 같이 공부하던 짝이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내가 아직 네 친구로 보이니?』 교육부가 해야 할 일 가운데 학교 주변을 배회하는 귀신을 쫓아내야 할 「고스트 버스터」의 역할이 있다. /기획특집팀 허두영 차장DYHUHH@KOREALI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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