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강경식 전경제부총리에 이어 10일 이경식 전한은총재와 김인호 전청와대경제수석이 경제청문회에 마지막으로 출석,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 소위 환란 3인방에 대한 증인신문이 마무리됐다.이에따라 조사특위 위원들의 신문과 환란 3인방의 답변과정에서 부각된 청문회 쟁점을 정리했다.
◇환란원인 姜전부총리는『기업의 차입경영, 고비용저효율,부실채권 증가에 따른 대외경쟁력 저하에 원인이 있다』고 밝힌후 『시민단체 등의 반대로 기아사태를 신속히 처리하지 못한 것도 원인이 됐다』고 증언했다. 반면 李전총재는『단기외채구조 심화로 유동성이 악화됐고 금융기관에 대한 건전성 감독의 부실이 원인』이라고 구재경원에 화살을 돌렸다. 金전수석은 기업들의 빚이 가장 심각한 요인이라고 지적, 구조적 원인론을 펴 姜전부총리를 거들었다.
◇외환위기 감지 姜전부총리는『97년 11월에 심각성을 느껴 IMF행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증언했다. 이에 李전총재는『97년 1월 외환위기 가능성을 처음 인지했으며 11월3일 외국인 주식투자한도 확대조치가 무위로 돌아간 후 IMF구제금융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金전수석도『11월초 외환위기를 감지했고 YS에게 몇번 보고를 했지만 IMF행 보고는 姜전부총리가 했을 것으로 판단해 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IMF 구제금융신청 논의 시점과 지연
姜전부총리는『중앙은행의 차입(스와프) 방안을 고집, 시간을 낭비했다』고 반박했다. 반면 李전총재는 97년 11월9일 관계기관대책회의에서 IMF행의 필요성을 강조한뒤『그당시로는 가용외환보유고가 200억달러가 넘어 구제금융신청이 안될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金전수석은『11월7일 공식회의에서 IMF얘기가 나왔고 13일 IMF행에 확신을 가졌다』며『한은법 등 쟁점이 안풀려 처리가 연기됐고 그때는 돈을 빌리기가 어려운 시기여서 공개적으로 말할수가 없었다』고 IMF신청 지연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환율정책 姜전부총리는『외환보유고의 운용책임이 한은에 있고 97년 당시 환율이 고평가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李전총재도『외환보유고를 소진한 것은 잘못이지만 환율정책이 잘못됐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며 姜전부총리를 옹호했다. 金전수석도『시장사정을 반영, 좀 올려야 되지 않겠느냐』고 증언했다. 그러나 당시 고환율정책을 고집한 것은 경상수자 적자가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97년 경제상황에 맞지 않았다는게 정설이다.
◇기아처리 지연과 실책
姜전부총리는『기아의 공기업화로 인한 대외신인도 추락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면 실수를 시인했다. 金전수석은『위장계열사 조사는 96년 5월부터 수개월에 걸쳐 100개 기업체를 대상으로 대대적으로 진행됐으며 79개 업체가 위장계열사로 드러났다』고 기아의 기산편입에 자신이 무관함을 주장했다.
◇외환보유고 관리 실패
姜전부총리는『외국에서 돈을 빌려오는 수밖에 없었으나 빌려오는 것이 여의치 않았다』고 답변했다. 李전총재는『한은에는 금융기관의 건전성 감독권한이 없으며 외환위기 감지와 외환관련 은행건전성 감독은 재경원이 하게 돼있다』고 재경원에 책임을 떠넘겼다.【양정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