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기업들이 전기요금과 인건비 급등에 짓눌려 줄파산하면서 대규모 실업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9일 독일 대표 연구기관인 할레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문을 닫은 독일 기업은 1만 7604곳으로 2005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2009년)보다도 많은 파산으로 17만 개의 일자리도 증발했다. 보고서는 전기요금 폭등과 급격한 인건비 상승을 줄파산의 주된 원인으로 분석했다. 코로나19 이후 저금리와 재정 지원이라는 보호막이 걷히자 구조적 비용 부담이 한꺼번에 기업들에 가중된 탓도 크다. 보고서는 올해 사라질 기업이 지난해보다 15~20%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독일은 전력 의존도가 유독 큰 나라다. 그런데도 독일은 탈원전을 밀어붙이며 안정적인 기저 전원을 스스로 포기했다. 한때 원전 비중이 30%에 달했던 전력 구조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산업용 전기요금은 ㎾h(킬로와트시)당 181원으로 최근 4년 새 73%나 뛰었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45%까지 높였지만 간헐성 한계를 넘지 못한 채 전력을 수입에 의존하면서 비용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정부가 뒤늦게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억제 장치를 도입했지만 이미 기업들이 버틸 체력을 잃은 뒤였다. 여기에 2020년 이후 37%나 오른 최저임금도 기업을 옥죄고 있다. 이상론적 정책 조합이 현실과 괴리되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독일이 똑똑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독일 기업들의 연쇄 파산 사태는 우리나라에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 높은 전력 사용량, 산업용 전기요금의 빠른 인상 구조까지 한국은 독일과 빼닮았기 때문이다. 독일은 너무나 많은 것을 잃고 나서야 탈원전 궤도에서 이탈할 수 있었다. 에너지 정책을 이념의 문제로 접근할 경우 산업 경쟁력과 일자리가 가장 먼저 희생된다는 사실을 독일의 사례가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해 전향적 언급을 한 것은 일단 고무적이다. 우리가 탈원전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독일의 전철을 뒤따를 이유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