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美서… 유럽서… 지구촌 상아탑은 지금 재정과의 전쟁중

[글로벌 포커스]<br>기부펀드수익급락·예산축소로 스포츠팀 폐지등 잇단 구조조정<br>인재 유출·연구 질 악화 우려속 "정부 지원 확대를" 목소리 커져



미국, 유럽 등 선진국 경제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와 재정위기가 신성한 학문의 전당인 대학마저 흔들어대고 있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공립대학은 물론이고 기부금이 넉넉하고 비싼 등록금을 받는 사립 명문대학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 대학은 재정 악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 같은 대학들의 구조조정 시도가 순수한 학문 연구 분위기를 전해하고, 연구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버클리대는 최근 대학 스포츠팀 5개를 없애버렸다. 그 동안 학교의 자부심으로 여겨졌던 야구와 남자 럭비까지 삭제 대상에 포함됐다. 내년에는 남녀 체조팀과 여자 라크로스팀도 사라진다. 버클리대는 그 동안 '돈만 쓰는' 스포츠 분야에는 보조금을 아끼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스포츠팀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결국 학교 측은 스포츠팀 정리를 통해 연간 400만 달러를 절감하기로 결정했다. 샌디 바버 대학 스포츠 부문 책임자는 "지난 몇 달 동안 고심한 끝에 고통스럽게 내린 결론"이라며 "이 같은 결과가 우리 학교 내 소중한 구성원들에게 줄 충격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 내 많은 대학들이 대학 스포츠 팀을 운영하고 있지만 수익을 내는 곳은 몇 곳 되지 않는다. 지난 해의 경우 대학 스포츠 중에서도 최고 수준인 FBS(Football Bowl Subdivision )에 속한 120개 팀 중 14곳만 겨우 수익을 냈다. 그 동안 대학들은 경기침체로 인해 재정 삭감 요구를 받는 가운데서도 스포츠에 대한 금전적 지원은 중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좀처럼 펴지지 않는 경제 상황 속에서 스포츠 부문의 구조조정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됐다. 매사추세츠주의 MIT는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OECD 교육 컨퍼런스에서 무료 온라인 강의 유료화를 검토 계획을 밝혔다. 그 동안 MIT는 전세계 공개강의운동(Open Course Ware movement)을 앞장 서서 이끌면서 양질의 교육 자료에 대한 온라인 접근에 대해 무료 개방 입장을 견지해왔다. 하지만 이날 컨퍼런스에 참석한 로리 브레슬로 MIT 교수ㆍ학습연구소 책임자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최고의 모델은 아닌 것 같다"며 "그래서 우리는 심각하게 새로운 이러닝(e-learning)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MIT가 입장을 선회한 이유로 '재정 압박'을 꼽았다. 지난 2008년만 해도 MIT 기부금펀드 규모는 101억 달러에 달했으나 최근에는 76억 달러로 줄어들면서 재정적 부담이 커졌다. 기부금 펀드 감소는 MIT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 대학경영자협회(NACUBO)에 따르면 지난 해 각 대학 펀드 수익률은 ▦하버드대(-29.8%), ▦예일대(-28.6%) ▦스탠퍼드대(-26.7%) ▦프린스턴대(-22.8%) 등이 모두 20%가 넘는 손실을 냈다. 올해 들어서는 그나마 미국경제가 미미하나마 회복세를 보이면서 기부금 펀드 수익률도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도 절대치를 회복하려면 한참 멀었다. 지난 해 30% 가까운 손실을 봤던 하버드대의 올해 펀드 수익률은 8.9%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 때문에 각 대학들은 직원 축소, 신규 건축 중단, 등록금 및 각종 부대 비용 인상 등을 통해 구멍 난 재원을 막고 있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장학금이나 기타 학생 지원 프로그램도 축소했다. 대학들이 재정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동안 학생들은 안 그래도 어려워진 가정 형편 속에서 대학 진학에 따른 비용 부담을 이기지 못해 주립대, 전문대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돈 때문에 우수 학생 유치 기회를 잃어버린 셈이다. 상아탑의 분위가 삭막해진 건 유럽도 마찬가지다. 심각한 국가 재정 위기 속에 놓인 영국의 대학들은 현재 학문의 질이 악화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 대학들은 지난 해 보다 더 악화된 재정적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대학들은 재정 적자 탈피를 위해 과도한 등록금 인상을 추진해 여론의 뭇매를 맡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대학 학위가 그만한 가치가 있긴 한가'라며 회의적인 시각을 담은 보도를 하기도 했다. 또한 과학 등 순수학문 연구에 대한 지원이 줄면서 국가 인재의 해외 유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영국과 다른 나라 간의 연구 지원금 격차가 커지면서 과학자들을 끌어들이던 영국 대학들의 매력이 감소하고 있다는 걱정이다. 영국은 올해도 노벨 생리의학상을 가져갈 만큼 그 동안 의학, 과학 등 여러 순수 학문에서 우위를 차지해왔다. FT는 "주요 대학들이 재정 삭감으로 인해 최고의 과학자들을 다른 나라로 떠날 보내게 될지 모른다며 걱정하고 있다"며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탈리아는 대학 지원 예산 삭감을 시도하다가 대혼란에 빠졌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하원의사당 앞에 정부의 교육 개혁과 재정 삭감에 반대하는 대학생과 교수, 연구원 수천명이 모였다. 이들은 손에 '정부가 지식을 파괴하고 있다''대학을 재건하자' 라고 적힌 배너를 들고 마리아스텔라 젤미니 교육부장관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에 따르면 이탈리아 정부는 현재 대학 연구에 시간 제한을 도입하는 등 대학 지원 예산 감축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교원과 학생들은 "교육에 대한 투자를 원한다" 며 "대학의 연구원들이 돈벌이를 위해 연구실에서 폭탄이라도 제조해야겠냐"며 정부를 비난했다. 이미 가을 학기가 시작됐지만 대부분의 공립대학이 정상적인 학사 일정을 소화해내지 못하고 있다. 공립 학교의 교수들은 강의를 거부하고 있고, 로마 공대 등 일부 대학은 학생들이 학교를 점거한 상황이다. 시위는 로마 뿐만 아니라 밀라노, 트렌토 등 전국 50개 주요 도시에서 계속되고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