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멕시코의 뒤늦은 NAFTA 탄식

멕시코로 이민 오거나 주재원으로 근무하면 반드시 속뜻을 알아야 할 단어가 있다. 스페인어 ‘아오리타(ahorita)’가 그것이다. 글자 그대로 옮기면 ‘지금 당장’쯤 되는데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멕시코인이 말하는 ‘아오리타’는 원뜻과 달리 일상생활에서는 ‘기약 없다’ ‘그냥 기다려라’라는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된다. 멕시코 특유의 낙천적 기질이 언어와 행동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셈이다. ‘빨리빨리’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멕시코의 ‘아오리타’문화에 속이 터진다. 약속을 지키지 않아 따질 경우에는 ‘뭐 이런 것 가지고 그리 야단이냐’며 핀잔을 받기도 한다. 멕시코인들은 이럴 때 “에스타모스 엔 멕시코(estamos en mexico)”라는 말을 쓴다. “우리는 멕시코에 있다”는 뜻인데 멕시코에서는 이런 일이 흔하기 때문에 당신이 이해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멕시코의 고질병인 부정부패에 대해서도 “에스타모스 엔 멕시코”라며 둔감하다. 기자가 멕시코에 현지 취재를 갔다가 멕시코인들의 ‘만만디’에 혀를 내둘렀다. 멕시코 경제부 공무원과의 인터뷰를 현지 대사관 채널을 통해 요청했는데 멕시코 현지에 도착할 때까지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다. 약속시간을 알려준다고 해놓고 도무지 감감 무소식이었다. 멕시코를 출국하기 전날까지 애를 태우더니 결국 출국 당일 오전에서야 인터뷰가 성사됐다. 멕시코는 일찍이 올림픽(1968년)과 월드컵(1970ㆍ1986년)을 개최하고 외환 위기(1995년)도 우리보다 먼저 겪었으며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앞서 체결했다. 멕시코의 지식인들은 지금 지난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고 탄식하고 있다. 지구 반대편의 중국이 저임금을 무기로 미국시장을 휩쓸면서부터 나타난 뒤늦은 후회다. 미국과 마주한 멕시코는 몰려드는 다국적 기업에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면 그만일 줄 알았다. 지금 멕시코는 ‘포스트 NAFTA’를 준비하고 있지만 한 박자 늦은 감이 있다. 중국은 저가품 수출 대국이라는 오명을 벗은 지 오래다. 멕시코의 자성은 멕시코 특유의 ‘아오리타’문화부터 고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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