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배럴당 40달러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중동 등 주요 산유국을 중심으로 외환보유액 증발 등 경제불안 조짐이 가중되는 분위기다.
17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9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보다 0.63달러(1.5%) 떨어진 배럴당 41.87달러에 마감했다. 지난 2013년 3월3일 이후 6년반 만에 최저치다. WTI 가격은 8월 들어 11%, 6월 이후로는 30%나 급락했다. 북해산브렌트유 역시 이날 0.45달러(0.93%) 하락한 48.74달러로 마감했다. 이날 유가 하락의 원인은 일본 경기침체 우려였다. 일본은 올 2ㆍ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4%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시장은 글로벌 경기둔화로 수요가 줄어든 반면 공급 과잉이 지속되면서 국제유가가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유가 추락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석유채굴 장비 수는 지난 7주 중 6주나 증가했고 중동 산유국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도 미 셰일 업체를 고사시키기 위해 증산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내 기준금리 인상 전망 등으로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것도 유가 하락의 요인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배럴당 유가 40달러선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다. CNBC가 17일 애널리스트, 원유 거래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2%는 올 9~10월 WTI 가격이 30~40달러로 하락한 뒤 연말까지 낮은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말 WTI 가격이 50~60달러로 반등할 것이라는 응답자는 32%에 불과했다.
투자가들도 속속 원유시장에서 철수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WTI 가격 하락에 베팅한 옵션 수는 24만7,000만개로 이달 들어 거의 2배로 늘었다. 시장조사 업체인 IHS의 대니얼 예긴 부회장은 "놀라운 사실은 유가 붕괴 이후에도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미국이 모두 원유 공급을 하루 200만배럴 늘린 것"이라며 "더구나 지금은 이란이 아직 시장에 돌아오기 전이라 앞으로 몇분기 동안 유가가 더 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유가 하락의 골이 더 깊어지면 재정적 체력이 소진돼 심각한 경제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7일 사우디 통화청의 발표자료에 따르면 올 6월 말 현재 사우디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전월 대비 1.1% 감소한 2조5,204억리얄(6월 말 환율 기준 6,718억6,500만달러)을 기록해 지난해 8월 말 이후 10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8월 말 외환보유액이 7,312억1,700만달러(국제통화기금 자료 기준)였던 점을 감안할 때 달러 환산 외환보유액이 8.1%(약 593억달러)나 감소한 것이다. 이 같은 사정은 중동의 다른 주요 산유국들에서도 비슷해 가뜩이나 지정학적 위기가 커진 중동 지역에 경제난까지 중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