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밥맛 없는' 직영급식의 교훈

위탁·직영 장단점 확실치 않은데<br>법제화 통해 아이들만 피해<br>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은<br>민간부문 위축 등 후유증 불러


얼마 전 고등학교에 다니는 조카를 만나 학교생활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대뜸 밥맛이 없어 죽겠다고 하소연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올해부터 점심 급식이 민간업체 위탁운영에서 직영체제로 바뀌었는데 맛이 워낙 없어 하루하루가 고역이라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아예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는 친구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주변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학교 급식이 직영으로 바뀐 후 반찬이 줄어들고 맛도 훨씬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학교 급식은 민간 위탁에서 직영체제를 거쳐 무상급식으로 바뀌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지난 2006년 한 급식업체에서 집단 식중독사건이 발생하자 위탁급식의 문제점이 갑자기 부각됐고 결국 2010년 1월까지 각급 학교에 대해 직영급식을 의무화하는 법률까지 서둘러 만들어졌다. 당시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학교에서 직접 급식을 제공하면 사고를 없애고 숱한 비리도 원천 봉쇄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직영급식에 미온적인 일부 교장들을 비리의 주범으로 몰아붙이면서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하지만 개별 학교에서 일일이 식자재를 구매하다 보니 당연히 단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무상급식까지 가세하다 보니 제대로 식단을 짜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자체 급식에 따른 관리업무까지 늘어나는 바람에 학교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사실 직영급식과 무상급식은 동전의 양면처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야권에서 일찍부터 직영급식을 도입하자며 서명운동까지 벌였던 것도 무상급식을 겨냥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직영이나 위탁이나 저마다 장단점이 있고 어느 것이 더 나은지 확실치도 않다. 다만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반드시 직영체제를 도입하라며 법으로 강제하는 나라는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위탁업소의 비리가 문제라면 관리감독을 강화하면 되는데도 굳이 법제화를 통해 전국의 모든 학교를 획일적으로 묶어 놓으니 아이들만 밥도 제대로 못 먹는 피해를 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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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학교 급식뿐만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경제민주화니 상생이니 하는 정치적 구호가 난무하면서 민간영역이나 시장경제가 온통 병폐만 낳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 탐욕에 젖은 대기업들은 무자비하게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가격을 함부로 올려 받고 소비자들을 우롱한다며 싸잡아 욕을 먹고 있다. 그러니 정책당국이 툭하면 직접 시장에 개입하겠다고 나서는 정부 만능주의가 기승을 부리기 마련이다. 정부가 알뜰 주유소를 운영하는 것이나 가격을 낮추겠다고 농수산식품유통공사를 통해 설탕을 수입하는 것도 대표적인 사례다. 보건복지부는 제약사들이 말을 안 듣는다며 국영 도매상을 만들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며 정부기관마다 세금을 투입해 민간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부추기고 있다.

문제는 민간 부문의 위축과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불러올 후유증이다. 가뜩이나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주유소시장에 특혜를 등에 업은 사업자가 들어서니 기존 업체들은 줄줄이 문을 닫고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사라지고 있다. 주유소 사장들은 정부 청사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겠다고 나섰고 마구잡이로 들여온 설탕은 구매처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대도 정치권은 과거 임대료 인상만 촉발했던 전월세 상한제 같은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정책들을 도입하겠다고 나선다니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물론 시장이 언제나 만능은 아니다. 미국의 금융위기에서 보듯이 시장의 실패는 후유증을 낳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민간영역을 제치고 일일이 시장을 통제하겠다고 나선다면 오히려 더 큰 부작용만 초래할 뿐이다. 바야흐로 대선의 계절이 돌아왔다. 이번에도 시장의 못된 버릇을 손봐주겠다며 유권자를 유혹하는 어떤 달콤한 공약이 쏟아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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