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을 선출하는 현행 임원선거규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후보자 추천 마지막 날 추천서를 출력해 제출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추천인의 신분이 노출, 비밀 선거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는 것. 공정한 선거를 치르기 위해 도입한 온라인 추천 시스템의 당초 취지가 훼손되는 것은 물론 불법 선거를 조장할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다.
박주봉 대주·KC 회장은 12일 중기중앙회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갖고 “당초 온라인 추천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추천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해 비밀 투표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는데, 추천인 명단을 출력해 제출하도록 하면 누가 자신을 추천했는지 알게 되는 것 아니냐”며 “임원선거규정 개정 등을 통해서라도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초 중앙회장 선거권을 가진 이사장 및 연합회장 530여명이 추천서를 교부 받아 추천하는 방식이 고려됐지만, 추천인 수 상한 초과와 중복 추천 가능성 등의 문제점이 지적되면서 온라인 추천 시스템을 도입하게 됐다. 이와 관련, 지난해 12월 18일 열린 중기중앙회 제17차 정기이사회에서 추천인이 구·시·군 선거관리위원회를 방문, 온라인 후보자 추천 시스템을 이용하도록 하는 조항을 만들었다. 당시 신설된 중기중앙회 임원선거규정에는 “‘온라인 후보자 추천시스템’을 통해 작성·출력된 추천서를 후보자 추천서로 본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후보자 추천기간(1월 26~30일) 동안 예비 후보자가 중앙선관위나 서울시선관위를 방문해 요청하면 추천인 인적 사항을 열람할 수 있고, 추천 마지막 날 추천 종료(오후 6시) 이후에는 추천인 명부를 출력할 수 있다. 박 회장은 바로 이 부분이 공정한 선거에 큰 장애 요인이 된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선관위에서 파견된 김지현 조사담당관은 “예비 후보자들이 자신을 추천한 사람의 인적 사항을 알고 있어야 다른 추천인을 대상으로 추천 권유 활동을 할 수 있다”며 “중기중앙회 임원선거규정에 근거하지 않은 상황에서 중앙선관위가 후보자의 추천 권유 활동을 일방적으로 제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 담당관은 “온라인 추천 시스템은 말 그대로 온라인을 통한 추천으로, 적정 규모 이상 추천을 받아야 후보로 등록할 수 있다는 얘기”라며 “온라인 추천과 회장 선거의 비밀 투표와는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거 관리를 총괄하고 있는 박용만 중기중앙회 감사실장은 “당초 이 부분이 문제로 제기돼 8명의 예비 후보들에게 자율합의 방식으로 의견을 모으려고 했지만, 4명은 현행 방식을 고집했고 나머지 4명만 추천인 명부를 공개하지 말라고 요구해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한 것”이라며 “포상금을 5,000만원으로 올리고, 불법 선거 징후가 포착되면 곧바로 관련자를 소환해 조사하는 등 선거 관리에는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회원 대부분이 사업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명단 공개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지적이다. 출마 의사를 밝힌 또 다른 예비 후보 A이사장은 “추천인 명단이 공개되면 회원간 갈등과 반목의 시발점이 되면서 선거 이후 후유증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추천자 명단을 공개하게 되면 추천 기간이 끝난 후 떨어진 예비 후보자 측이 본선에 오르는 후보자에게 줄서기를 하면서 자신이 확보한 추천인 규모만큼 금전을 요구하는 등 불법 금권 선거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명단이 공개되는 것으로 알려지자 일부 지역 조합 및 연합회에서는 추천권 자체를 포기하는 등 당초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B이사장은 “우리 지역에서는 어차피 한 후보만 밀었다가 크게 낭패를 볼 수 있는 만큼 이번 추천 과정에는 참여하지 않고, 대신 선거 당일 회장 투표에만 참석하기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편 현행 방식을 개선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추천자수 확인서 발급만으로 충분하다는 게 박 회장의 주장이다. 박 회장은 “추천인 수나 추천인 인적 사항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후보자 등록 조건인 추천인 수(10~20%)만 넘으면 ‘추천자수 확인서’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다”며 “다만 추천인 명단을 열람하고자 할 경우 회장 선거가 종료된 후 일정 기간을 두고 열람 요청시 명단을 공개하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주장은 선거권을 갖고 있는 정회원이나 예비 후보군 사이에서 공감대를 얻고 있는 분위기다. D이사장은 “어차피 후보로서 적정 규모의 추천을 얻었는지 따지면 되는데 굳이 명단까지 공개할 필요가 있느냐”며 “추천자수 확인서를 발행해 주고, 정식 후보 등록을 한 후에 정책 대결 등을 통해 제대로 승부를 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