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신용카드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카드 산업이 위기가 아닌 적은 없었다지만 최근 업계가 느끼는 불안감의 강도는 예년과 크게 다르다. 위기의 요인이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임원은 "왜 카드업이 정치권의 표몰이 도구가 돼야 하느냐"며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기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순한 수익성 악화를 떠나 금융 업종으로서의 존폐를 고민하고 있는 카드 산업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업계 1위 신한카드의 희망퇴직, 그리고 삼성카드와 현대카드 매각설. 올해 말 카드 업계를 떠들썩하게 한 이 사건들은 카드 산업이 처해 있는 현실이 어떠한가를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올 들어 통과된 영세 가맹점 수수료 인하와 카드 포인트를 일괄적으로 기부하는 입법안 등은 타당성을 떠나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홍보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에서 업계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영세 가맹점 수수료 인하나 기부 등의 취지는 좋지만 무조건 '해마다 수익이 나니 수수료를 깎으라'는 식의 밑도 끝도 없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카드업도 수익을 추구하는 금융산업의 하나라는 점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아 허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21일 업계 1위 신한카드는 2013년 이후 2년 만에 7년 이상 근속한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앞서 삼성카드에서는 34명의 임원 중 25%에 달하는 8명의 임원이 회사를 떠났다. 시장 점유율 업계 3위인 삼성카드와 5위 현대카드 등 중상위권의 대기업 계열 카드사들은 매각설에 휩싸였다. 현대카드는 최고경영자(CEO)인 정태영 부회장이 직접 "검토조차 하지 않은 사항"이라고 선을 그었고 삼성카드는 "매각설은 사실무근"이라고 공시까지 했지만 툭하면 번지는 매각설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카드 산업에 닥친 이 같은 위기의 원인은 정치권과 정부의 가격 개입에서 비롯됐다. 대표적인 것이 카드사 가맹점 수수료다. 정치권은 카드사들이 해마다 큰 수익을 내고 있다는 점을 주요 근거로 내세워 영세 가맹점 수수료를 0.7%포인트 인하했지만 실제 카드사들의 수익성은 정체돼 있다. 카드 업계 당기순이익은 지난 2007년 약 4조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10년부터는 2조원 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1년 전년 대비 약 6,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이 줄었고 2013년에도 전년 대비 약 4,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이 줄었다.
수수료 인하 요인으로 꼽힌 금리 인하도 마찬가지다. 정훈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가맹점 결제 관련 비용에서 자금 조달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7~10% 수준이기 때문에 금리 인하에 따른 카드사 비용 절감분을 현재 평균 가맹점 수수료율(2%로 가정)에 적용하면 금리가 0%가 된다는 극단적인 가정에서도 인하가 가능한 수수료율은 0.2%포인트 미만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도 이번 가맹점 카드 수수료 인하폭이 과도하다며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카드 업계가 처한 현실을 설명해도 결론은 정해져 있는 모습"이라며 "수수료 인하에 이어 유효기간이 지난 카드 포인트를 기부하도록 하는 법안에 여야가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업계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받아들이는 것뿐"이라고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