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실물 부문에서 지난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세계 경제위기보다 우리 산업계에 영향이 더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일본 부품소재 기업들이 오는 7~8월까지 정상화되지 않을 경우 우리 주력산업도 핵심 부품소재 공급부족에 따른 타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원동진 지식경제부 부품소재총괄과장은 8일 산업연구원에서 열린 '일본 대지진 이후의 한일 산업협력 방향' 세미나에서 "반도체는 실리콘웨이퍼, 자동차는 기어박스와 엔진, 휴대폰은 백업배터리, 디스플레이는 기판유리 등 일본이 아니면 공급 받기 힘든 핵심부품이 많다"면서 "우리 기업들이 1개월에서 3개월치 재고를 확보하고 있지만 7~8월까지 버틸 수 없어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일본 동북지역과의 무역규모는 전체의 1.3%로 직접적인 영향이 크지 않다"면서도 "방사성 물질 오염이 어디까지 퍼지는지를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여름에 냉방수요가 올라가면 전력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송병준 산업연구원장도 "이번 대지진은 일본에서 수입한 핵심 부품소재를 이용해 새로운 제품을 생산한 후 이를 수출하는 한국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교수 역시 "실리콘웨이퍼처럼 전세계가 일본 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부분에서는 당분간 부족분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토론에 참여한 구본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국은 (전체 대일 수입액 중) 60%, 전세계적으로 50% 이상 일본에서 부품소재를 수입하는데 이번 지진으로 아시아뿐 아니라 글로벌 제조기업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 확인됐다"며 "지진 피해지역은 상대적으로 농업이 발달했지만 핵심 부품소재 분야도 많다"고 말했다. 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한중일 간 산업협력의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장석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센터 소장은 "한일 관계가 '파트너'에서 '친구'로 변모함에 따라 향후 협력내용도 달라져야 한다"며 "인력교류ㆍ생산협력ㆍ디자인협력 등을 통해 아시아시장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해볼 만하다"고 밝혔다. 이형오 숙명여대 교수는 "서로 알려주지 않으려는 기술협력보다는 마케팅 협력을 강화하고 인수합병(M&A)을 활용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부족했던 중소기업 간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후카가와 교수는 "한일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통합 패키지를 통해 양국의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