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과 세상] 돈 맛에 취한 미술시장 속살을 파헤치다

■ 나는 앤디 워홀을 너무 빨리 팔았다 (리처드 폴스키 지음, 아트북스 펴냄)<br>비싸게 사서 더 비싸게 파는<br>부의 전유물이 된 예술품 거래<br>내부자 시선으로 여과없이 드러내


미국의 팝아트와 세계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앤디 워홀의 '자화상'. 삐죽하게 솟은 머리카락 때문에 이 작품은 '깜짝 가발'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며, 크리스티 경매에서 240만 달러에 거래되기도 했다. /사진제공=아트북스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이 소유하고 있다가 145억원의 유상증자에 대한 담보로 하나캐피탈에 제공한 5점의 그림 중 하나인 미국화가 사이 톰블리의 '볼세나'. 하나캐피탈은 올해 초 이 그림을 매각하기로 결정했고 지난 3월 뉴욕 필립스드퓨리 경매에서 624만2,500달러에 팔았다. 약 70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사실 이 작품의 감정가는 130억~160억원 수준이었다. 이 작품이 이번 같은 매각절차로 시장에 나온 게 아니었더라면, 즉 급매물로 나온 게 아니거나 더 큰 경매사에서, 5월이나 10월처럼 메이저 경매가 진행되는 시기에 나왔더라면 낙찰가는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이 작품과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같은 시리즈 중 하나는 지난해 5월 소더비 경매에서 우리 돈 160억 원에 팔리기도 했다.

미술시장의 내부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이 책은 사이 톰블리와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훨씬 먼저 타계한 앤디 워홀의 작품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작품가 상승률이 가장 가파른 전후미술(Post-War Art)이 주전공인 개인 미술품 거래상인 동시에 세계적으로 정평난 미술시장 전문가다.


저자 폴스키는 2002년에 앤디 워홀의 자화상인 일명 '깜짝 가발'초록색 작품을 4만7,500달러에 구입했다. 투자 이전에 애착과 자부심으로 산 그림이었기에 저자는 이를 평생 간직하고 싶어했지만 2005년 개인적인 재정난과 결혼생활의 문제 등을 이유로 경매에 내놓게 된다. 물론 당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동시대미술(Contemporary Artㆍ전후 현대미술) 시장에서 시세 차익을 거두고 싶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결국 그림은 37만5,000달러에 팔렸다. 3년 만에 8배로 상승했으니 만족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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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후 2년간 미술시장은 '미친(Crazy) 듯'팽창했다. 2007년에는 '깜짝 가발' 초록색과 오렌지색 작품이 각각 83만7,500달러에 거래됐다. 그 해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오렌지색 '깜짝 가발'이 240만 달러에 낙찰되기에 이른다. 저자가 팔지 않았더라면 50배 이상 오른 금액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미술계 내부자가 아니면 좀체 알 수 없는 미술시장의 적나라한 내부를 파헤쳤다. 고귀한 예술 작품을 돈으로 전환하는 불경스러운, 그러나 실재하는 그 현실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특히 미술시장이 성장했다가 금융위기로 무너지기 직전인 2005년부터 2008년까지의 시기에 집중했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앤디 워홀은 물론 로이 리히텐슈타인, 재스퍼 존스, 마크 로스코, 에드 루샤, 리처드 프린스 등 거장의 이름을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디서 거래되고 얼마에 팔리고 있는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동시에 저자는 경매에 작품을 내놓을 때 가치를 최대한 인정하면서도 사는 사람의 마음에 들 수준의 최저 예상가를 정하는 법, 경매 시작 전에 예상 구매 참여자를 알아내는 법, 특정 작가의 작품을 많이 갖고 있는 수집가가 그 작품의 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하거나 혹은 그림값을 올리기 위해 경매에 참여하는 모습 등을 노골적으로 얘기한다.

여전히 미술시장은 '비싸게 사서 더 비싸게 파는' 부자들의 전유물이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더 크지만, 발가벗겨진 미술계의 진면목을 들여다 보는 재미로도 충분히 흡족한 책이다. 1만6,000원.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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