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모방과 창조

김진형 남영비비안 대표이사


스승과 제자였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에 대해 서로 다르게 생각했다. 부정적으로 판단했던 플라톤은 모방이 진리와 본질을 왜곡시키는 기능만 있다고 했다.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은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고 배움의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교육에 기여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도 모방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새로운 개발이 기업 생존을 결정하는 전자 및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창조와 모방에 관한 입장은 늘 첨예하게 대립한다. 애플과 삼성의 특허소송도 모방에 대한 견해 차이에서 비롯됐다.


개인적으로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을 믿는 입장이다. 하늘 아래 존재하지 않던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건 확실히 어려운 일이다. 이런 부담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을 리 없다. 그래서 나는 주위를 잘 둘러보되 그것을 기존과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라고 말한다. 제품을 개발하는 상품기획이나 디자인부서에서는 시장조사를 위해 해외로 출장을 가는 경우가 많다. 직원들은 동종업계인 속옷 분야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전혀 다른 분야를 살펴보고 올 것을 주문한다. 가령 건물 구조에서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화장실 구조를 유심히 보곤 한다. 화장실은 건물에 꼭 필요한 장소로써 전체 건물과의 구조적인 조화는 물론 사용자 편의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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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에 대한 견해 중 어느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보긴 어렵지만 정도의 차이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은 분명 모방을 긍정적으로 보는 견해다. 혁신은 모방을 통해 이뤄지고 모방을 넘어선 '청출어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방이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모방의 타성과 편안함에 젖게 되면 창조와 혁신을 멀리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모방을 배움과 성장의 기회와 발받침으로 삼느냐, 혹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베끼는 데 만족하면서 현재에 정체하느냐는 한 끗 차이다.

디자인이 중요한 패션계에서도 모방에 대한 목소리는 제각각이다. 지난해 겨울 한파가 밀려올 것이라는 예보에 따라 크게 인기를 얻었던 아이템은 바로 고가의 프리미엄 패딩이었다. 프리미엄 패딩의 인기가 높아지자 국내 몇몇 브랜드들이 거의 흡사한 디자인을 앞다퉈 내놓았고 심지어 가장 핵심이 되는 디자인까지 비슷하게 모방한 경우가 나타났다. 십수년 전만 해도 신상품을 내놓을 때 패션 트렌드를 주도한다는 유럽 여러 디자이너의 패션쇼를 참고한 후 런웨이의 트렌드가 실생활 패션에 어떻게 접목되는지를 보기 위해 일본에서 유행하는 패션스타일을 한 번 더 참고하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일본의 것을 참고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일본 트렌드를 참고하는 것은 과거의 관행일 뿐 최근에는 소비자들이 트렌드를 흡수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장하고 있는 국내 패션계에서 인기 있는 타 브랜드의 디자인을 단순히 모방해 이익을 취하려 하는 것은 오히려 발전을 저해하는 길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혁신의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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