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책사업 환경논쟁
김인환 계명대 환경학부 교수·경제학 박사
김인환 계명대 환경학부 교수
국책사업이 환경파괴를 이유로 중단되거나 지연되고 있다. 경부고속철의 천성산 터널 공사에 반대하는 환경단체의 ‘도롱뇽 소송’을 보면서 미국에서 지난 78년을 전후해 일어난 텔리코댐(Tellico Dam) 건설 논쟁을 생각나게 한다.
미 의회는 67년에 야심적인 수자원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소테네시강에 텔리코댐의 건설을 승인했다. 그런데 73년에 테네시의 한 어류학자가 이 강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민물고기의 일종인 달팽이시어(snail darter)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 민물고기는 ‘멸종위기종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멸종위기 어종으로 지정됐다.
이 어종을 보호하려면 75%나 진척된 댐의 건설은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는 결국 사법부의 법적 판단을 받는 단계까지 갔다. 대법원은 이 ‘멸종위기종법’의 효력을 확인하는 판결을 내렸고 댐의 건설은 중단됐다. 다음 해에 의회는 ‘세출예산법’에 이 어종을 ‘멸종위기종법’에서 제외하는 부속조항을 통과시켜 댐을 건설하도록 함으로써 시비를 종결했다.
이 논쟁에서 개발론자의 주장은 댐의 경제성이 달팽이시어의 보존가치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고 생태주의자들의 주장은 비용에 관계없이 달팽이시어는 보존돼야 하며 멸종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몇 년 후에 실제로 나타난 결과로 볼 때 양쪽 모두 잘못된 주장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댐은 경제성이 없는 투자였으며 달팽이시어는 그 후 근처의 Hiwassee강에 이주시켜 서식하는 데 성공했으므로 멸종위기종이 아닌 것이었다. 결국 경제분석가나 생태학자 모두 불확실한 과학적 정보를 바탕으로 무위(無爲)한 가치논쟁을 벌린 것이었다.
이 사례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과학적 정보의 불확실성(scientific uncertainty) 때문에 환경보전에 대한 효과적인 정책결정이나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는 자연현상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분명한 진리를 제시하기 어렵고 결국 모호한 결론과 논쟁적인 해석을 제시하기 십상이다. 개발사업의 환경영향에 대한 이런 모호한 해석은 정책당국과 환경단체 간에 지루한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이에 더해 더 큰 쟁점은 자연환경이나 종(種)에 대한 가치평가의 객관성 결여 문제이다. 가치라는 것이 원래 상대적이고 주관적으로 결정되는 것이지만 시장에서 매매가 되는 재화와 서비스는 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에 의해 그 가치가 객관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환경이나 종의 가치를 객관화할 수 있는 가격 메커니즘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연환경이나 종의 가치에 대해 생태주의자와 개발론자의 대립은 극단으로 갈 수 있다.
개인이 자연환경이나 종에 대해 어떠한 가치를 부여하건 그것은 주관적인 평가이기 때문에 시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생태주의자의 주관적 가치평가에 근거한 주장 때문에 중요한 정책결정이나 국책사업의 결정이 흔들릴 때이다.
이제 경부고속철의 천성산 터널 시비(是非)를 보자. 정부와 환경단체는 천성산 터널공사가 생태계에 미치는 환경영향을 재평가하기로 했다고 한다.
정부는 이렇게 사업이 지연되면 고속철의 잠재적 이용자가 이용하지 못하게 되는 사회적 편익의 기회비용이 얼마나 될 것인가를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결국 우왕좌왕하는 정부는 국민이 누릴 수 있는 복지를 감소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실 앞에서 언급한 과학적 불확실성을 고려한다면 환경영향 재평가는 확정적 결론을 내리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전문가가 여러 가지의 상충되는 의견을 제시할 것은 美灼?일이다. 전문가의 상충되는 의견을 종합해 선택하는 것이 정책결정이며 이것은 고유한 정부의 몫이다.
전문가가 정책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전문가의 판단에만 의존하려는 정책당국의 행태는 실망스럽다. 지금 우리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는 극한적이 주장과 정부의 우왕좌왕은 법과 제도(institutions)라는 국가의 기본적 시스템 자체가 작동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입력시간 : 2004-09-15 1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