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변했다. 이제 화두는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와 타이거 우즈(39·미국)의 신구 대결이 아니다. 아직 25세에 불과한 매킬로이가 언제까지 세계 1위를 지킬지, 메이저대회 승수는 몇 승까지 늘릴 것인지가 새 화두다.
우즈의 시대가 가고 매킬로이의 시대가 열렸다. 매킬로이는 4일(이하 한국시간)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에서 역전 우승, 메이저대회와 WGC 시리즈 대회를 연속 우승한 역대 두 번째 골퍼(첫 번째는 2006년의 우즈)가 됐다. 지난달 21일 브리티시 오픈 우승에 이은 2개 대회 연속 우승. "메이저 3승을 했지만 WGC 우승은 없다. 무승 목록에서 지우고 싶다"던 매킬로이는 WGC 첫 승으로 세계랭킹 1위도 탈환하게 됐다. 공동 8위에 그친 애덤 스콧(호주)을 밀어내고 2위에서 1위로 도약한다. 11위까지 떨어졌다가 3개월 만에 10계단을 끌어올린 것. 지난해 3월 이후 1년4개월 만의 정상 탈환이다.
매킬로이는 5월 말 있었던 유럽 투어 BMW PGA 챔피언십 우승까지 더하면 최근 70여일간 7개 대회에서 3승을 챙겼다. 이쯤 되자 미국 ESPN은 매킬로이의 세계 1위 수성 기간과 메이저 4승이 나올 시기를 두고 네티즌 투표를 시작했다. 매킬로이의 시대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334야드…드라이버 적응 완료="드라이버가 이 정도로 잘 맞은 적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매킬로이가 이날 오하이오주 애크런 파이어스톤CC 남코스(파70·7,400야드)를 정복한 뒤 남긴 말이다. 단독 선두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에 3타 뒤진 2위로 출발한 매킬로이는 버디 5개와 보기 1개로 4타를 줄여 최종합계 15언더파를 적어냈다. 가르시아(13언더파)는 브리티시 오픈에 이어 이번에도 매킬로이에 밀려 2위에 머물렀다. 매킬로이는 1~3번홀 연속 버디를 잡아 1타 차로 전세를 뒤집었고 후반 들어 보기 없이 버디만 1개 잡는 깔끔한 플레이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통산 8승을 쌓았다. 미국 CBS스포츠는 "매킬로이가 매머드 같은 드라이버와 단도로 찌르는 듯한 정교한 아이언·퍼팅으로 필드를 공포로 몰아갔다"고 표현했다.
매킬로이에게 우승상금 153만달러(약 15억8,000만원)를 가져다준 것은 마법의 드라이버였다. 기록만 보면 그린 적중률 공동 1위(79.17%)를 찍은 아이언에 더 감사할 법하지만 매킬로이는 드라이버에 영광을 돌렸다. 페어웨이 안착률은 60.71%(공동 12위)로 그저 그랬다. 하지만 페어웨이를 크게 벗어난 횟수는 극히 적었고 무엇보다 평균 거리 334.8야드(1위)를 기록했다. 올 시즌 자신의 PGA 투어 평균(310.3야드)보다 20야드 이상 더 나간 것이다. 2라운드부터 드라이버가 잘 맞기 시작하자 매킬로이는 4라운드에서 대부분의 티샷 때 드라이버를 드는 공격적 플레이로 가르시아를 주눅들게 했다.
지난해 2,200억원에 이르는 나이키와의 초대형 계약으로 용품을 전면 교체한 매킬로이는 그해 PGA 투어 무승에 그쳤지만 혹독한 적응기를 거쳐 클럽과 볼에 완전히 적응한 모습이다. 5월 파혼으로 골프에만 매달리게 된 것도 무서운 상승세를 불러왔다. 매킬로이는 "나는 드라이버만 잘 맞으면 모든 클럽이 다 잘 맞는다. 드라이버에 굉장한 자신감이 붙었다"고 말했다.
◇적수가 안 보인다=우즈가 통산 8승을 올린 텃밭에서 자신의 시대를 선언한 매킬로이. 골프계는 이제 그의 독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노장에 접어든 '황제' 우즈가 허리 부상 악령을 떨치지 못하는 가운데 한때 우즈의 대항마로 불렸던 가르시아도 최근 전성기 기량을 되찾았지만 매킬로이 앞에서는 역부족임이 확인됐다. 베테랑 필 미컬슨(44·미국) 역시 위협적이지 않다. 이번 대회 공동 15위를 포함, 올 시즌 톱10 진입이 없다. 아직 먼 얘기이기는 하지만 전세계 1위 스콧의 경우 2016년부터는 '우승 제조기' 브룸스틱(대빗자루) 퍼터를 사용할 수 없다. 퍼터 그립을 가슴이나 배에 고정시킬 수 없다는 룰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오는 7일 개막하는 PGA 챔피언십에서 매킬로이는 메이저 4승을 노린다. 스콧은 "요즘 매킬로이의 컨디션이라면 언제든지 믿기 힘든 플레이를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권' 우즈, 올해도 메이저 빈손?=텃밭에서 분위기 전환을 노렸던 우즈는 허리 통증으로 기권했다. 이날 우즈는 9번홀 티샷을 한 뒤 카트를 타고 코스를 떠났다. 그는 "2번홀 벙커 턱에서 왼발이 높은 불안정한 자세로 샷을 했을 때 통증이 왔다"고 말했다. 지난 3월 허리 미세현미경 추간판 절제술을 받은 그는 부상이 재발한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PGA 투어 홈페이지는 우즈가 대회장을 떠날 때 골프화 끈을 풀기 위해 허리를 굽히지 못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동시에 이번주 열리는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PGA 챔피언십 출전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우즈는 2008년 US 오픈에서 메이저 통산 14승째를 거둔 뒤 6년 넘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지난달 복귀전인 퀴큰론스 내셔널 컷오프, 이어 브리티시 오픈 69위로 부진했어도 허리 통증이 없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페덱스컵 랭킹 217위에 머물고 있는 우즈는 상위 125명만 출전하는 PGA 투어 플레이오프 진출도 사실상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