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동십자각] 기업들 '바쁜 10월' 실종

이런 점에서는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한해 사업을 마무리하고 이를 토대로 내년도 경영계획을 짜는 시점이 바로 10월이다. 「간접부문」이라며 홀대를 받던 기획·회계·자금 등의 부서들이 가장 대접을 받는 것도 지금이다.예년 같으면 한해 실적을 점검하고 환율·금리·국내외 시황분석 등 새해 경영계획을 짜기 위한 기초자료를 준비하고 투자계획을 짜느라 철야근무도 예사로웠다. 그래서 기업들의 사무실은 늦은 밤까지 환하게 불이 켜져 있던 것이 10월의 「기업풍경」이었다. 하지만 올해 기업가의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가 못한 것 같다. 10월이 벌써 중턱을 넘어섰지만 그들은 여전히 일손을 놓고 있다. 더욱이 내년은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해여서 그 준비는 예년과도 비할 수 없을 터인데도 말이다. 최근 국내외 경영환경을 보면 기업들의 이런 사정을 짐작할 만도 하다. 불안정한 환율이 그렇고,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국제원유가와 곡물 등의 원자재 가격동향, 연착륙을 시도하고 있는 미국경제, 평가절하 가능성이 잠재된 중국 위안화 등, 불안한 해외변수가 너무 많다. 안으로는 대우사태를 계기로 금융불안이 잠재되어 있고 경기전망 또한 불투명하다. 하지만 이런 불확실성이 기업들의 발목을 잡을 정도는 아니다. IMF(국제통화기금) 체제를 전후한 지난 97년과 98년에도 기업들의 10월은 이렇지는 않았다. 기업들이 일손을 놓고 있는 진짜 이유는 정부의 정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연말까지 부채비율 200% 달성이 발등의 불이 되어 있고 내년 4월로 다가온 총선이 운신의 폭을 바짝 좁혀 놓고 있다. 난공불락으로 여겼던 대우가 무너졌고 서슬퍼런 재벌개혁의 칼날이 어느 쪽으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관망」밖에는 달리 선택할 대안이 없다는 것이 요즘 기업인들의 푸념이다. 기업의 의욕이 꺾이고 기업가정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말까지 들린다. 정치권을 싸잡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해묵은 재벌문제를 해소하려는 정부의 개혁정책을 탓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기업들이 투자계획을 세우지 못하면 내년이후 우리경제의 성장원동력이 위축되는 부작용이 너무 크다는 우려에서다. 정치론리가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우(愚)를 더이상 되풀이할 수는 없다. 새로운 천년을 앞두고 우리나라가 해결해야할 가장 큰 과제는 바로 경제논리를 세우는 것이 아닌가 싶다. 눈 코 뜰새 없이 바쁜 10월이 그리워진다. 민병호 인터넷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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