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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중앙아시아서 처음으로 탈리마잔 복합화전 플랜트 따내
대림도 공기 획기적 단축 내세워 比 정유공장 프로젝트 손에 쥐어
대우·SK건설 등 FEED시장 진출… 화공플랜트 기술특허 확보 시급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남쪽으로 1시간30분을 날아가면 도착하는 고도(古都) 카르시. 실크로드의 심장인 사마르칸트에서 인도로 넘어가는 오아시스의 중심에 있어 1300년대 칭기즈 칸의 후예인 케벡 칸이 둥지를 틀기도 했던 곳이다. 이후 오랫동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지만 가스 등 천연자원의 보고로 불리며 최근 옛 명성을 다시 찾아가고 있는 도시다.
카르시에서 다시 차를 타고 한 시간가량 달려 도착한 인근 탈리마잔 지역에서는 가스를 태워 전기를 생산하는 복합화력발전소 건설공사가 한창이다. 한낮 평균 기온을 40도까지 끌어올리는 뙤약볕과 이를 피할 나무 한 그루조차 찾기 힘든 메마른 땅. 지하 14m 깊이까지 흙을 퍼낸 뒤 자갈과 모래 등의 혼합물을 넣는 지반 강화 작업에 동원된 덤프트럭들이 이 불모지에서 먼지를 흩날리며 바삐 오가고 있다. 지진이 잦은 나라인 만큼 현장 직원들의 얼굴에는 내진 설계를 건물에 그대로 구현해내기 위한 엄숙함이 묻어났다.
◇신뢰와 기술력으로 일궈낸 성공사=현대건설과 대우인터내셔널 컨소시엄이 지난해 3월 따낸 탈리마잔 복합화력발전소 프로젝트는 현대건설이 보유한 기술력이 없었다면 성사되기 어려운 사업이었다.
2012년 우즈베키스탄 국영전력청은 경제성장에 맞춰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450㎿급 복합화력발전소 2기를 발주했다. 우즈베키스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3국(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의 지난해 평균 경제성장률은 6.5%로 독립국가연합(CIS) 국가의 평균 경제성장률(2.1%)을 압도한다.
문제는 이 같은 발주처의 추상적 요구를 현실화할 수 있는 기본설계를 하고 다시 이를 구체화할 상세설계와 자재조달·시공까지 일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건설업체를 찾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복합화력발전소는 1차로 가스터빈을 돌려 전력을 얻고 여기서 나온 배기가스열로 발생한 증기로 2차 발전을 하는 만큼 기존 화력발전소보다 설계가 어렵다.
김용욱 현대건설 전력사업본부 상무는 "현대엔지니어링의 기본설계 능력에 우즈베키스탄에서만 20년 넘게 쌓아온 현대건설의 시공 능력에 대한 신뢰까지 더해지면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중앙아시아에서 첫 발전플랜트 사업을 수주할 수 있었다"며 "급격하게 성장하는 중앙아시아의 발전 플랜트 시장에서 영역을 확대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본설계부터 시공까지…'원셋(One-set)'으로 승부하라=대림산업이 필리핀 바탄주에 짓는 페트론 리파이너리 마스터플랜 2단계 공사도 기술력과 신뢰를 바탕으로 따낸 대표적 사례다.
2010년 필리핀 정부가 민영화한 페트론 인수를 결정한 산미구엘은 대대적인 정유공장 증설 투자에 나섰다. 라몬 앙 산미구엘 회장의 지시를 하달 받은 당시 페트론의 경영진이 첫 번째로 문을 두드린 곳은 플랜트 시장에서 기술력으로 가장 앞선다는 프랑스의 테크닙. 테크닙은 54개월 동안 기본설계부터 시작해 완공까지 끝내겠다는 답을 보내왔다. 두 번째인 일본의 JGC는 48개월을 제안했다. 앙 회장이 이를 모두 거부하자 페트론이 세 번째로 찾은 업체가 바로 대림산업이다. 대림산업은 36개월에 공사를 끝내겠다는 계획을 제시했고 결국 19억8,000만달러의 프로젝트를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대림산업이 경쟁 업체에 비해 공기를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설계부터 상세설계·시공까지 한꺼번에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유재호 대림산업 상무는 "우리가 36개월의 기간을 제시하자 앙 회장이 부하직원들만 볼 수 있게 탁자 밑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고 들었다"며 "원천기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의 악센과 같은 쟁쟁한 라이선서를 조율할 수 있는 기본설계 능력을 갖춘데다 시공까지 수행할 수 있어 사업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플랜트 사업 설계는 모두 세 부분으로 나뉜다. 기술특허 등을 적용해 프로젝트의 대략적인 밑그림을 그리는 기본설계, 프로젝트 기간과 비용, 기술특허를 보유한 라이선서와 사업주의 요구사항을 설계에 반영해 플랜트에 들어설 시설물을 결정하는 FEED(Fornt End Engineering Design) 설계, FEED 설계를 해당 국가의 법규 등에 맞춰 실제 시공이 가능하도록 하는 상세설계로 구분된다. 지금까지 기본설계와 FEED 설계는 세계 유수의 업체가 맡고 우리 건설업체는 상세설계만 맡아왔다.
◇FEED 시장에 첫발 내딛는 건설사들=최근 들어 우리 건설사도 FEED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베네수엘라에서 석유 수출 시설 FEED 설계를 6,734만달러에 수주했다. 이 공사는 베네수엘라 최대 유전지대인 오리코노 지역에 원유저장, 이동설비, 부두시설을 비롯해 1,500km에 이르는 파이프라인 등을 건설하는 공사다. EPC(설계·구매·시공) 계약금액은 1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베네수엘라 프로젝트는 미국·유럽 등 선진국 엔지니어링 업체가 독식해온 고부가가치 플랜트 FEED 시장에 진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발주처와 기본설계 및 EPC 전과정을 일괄 진행하기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기 때문에 시공권도 따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SK건설과 삼성엔지니어링·현대엔지니어링 등도 FEED 시장에서 선진국 경쟁 업체를 따돌리고 프로젝트를 따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화공플랜트의 경우 기본설계를 수주하기 위해서는 기술특허를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데 우리 건설업체가 가진 기술특허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형 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부가가치가 높은 기본설계나 FEED를 수주하고 싶어도 이와 관련한 기술특허를 보유한 곳이 한 곳도 없는 실정"이라며 "그렇다 보니 최근에는 엔지니어링 역량 강화를 위해 해외 업체를 인수합병(M&A)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