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0월12일] 이시다 바이간


근면과 성실, 빈틈 없는 제품, 세계 최고의 저축률…. 일본 경제의 특장점이다. 마음만 먹으면 연간 무역수지 흑자 1,000억달러선을 가볍게 넘는 일본의 저력을 이름 하나에 담을 수 인물이 있다.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岩), 3년 전 일본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 자본주의의 원류’라고 지칭한 사람이다. 이시다가 태어난 1685년(10월12일생)은 일본 최대 활황이었다는 겐로쿠(元祿)시대 호경기의 내리막길. 빈농의 차남인 이시다가 8세 때 견습사원으로 들어간 포목점이 망한 것도 불황의 전조 때문이었다. 가게가 문을 닫았지만 이시다는 5년간 아무것도 받지 않은 채 일하며 주인을 먹여 살렸다. 집에 돌아와 농사를 짓던 이시다는 23세 때 다시 교토 대형 포목점의 견습생으로 입사해 17년 만에 지점장에 올랐지만 진리를 찾겠다며 은퇴, 스승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 유ㆍ불ㆍ선과 신도를 공부한 끝에 깨달음을 얻은 45세 때 학교를 세워 죽을 때(1744년ㆍ59세)까지 제자를 길러냈다. 이시다가 전파한 ‘세키니 신가쿠(石門心學)’의 골자는 ‘제업즉수행(諸業卽修行)’. 모든 노동이 정신수양이며 자기완성에 이르는 길이라는 그의 사상은 급속도로 퍼졌다. 불황 속에서 부유층의 사치와 실업, 양극화 심화 같은 사회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노동을 통한 인격수양 열풍으로 노동시간이 길어지자 상품의 질이 좋아졌다. 마무리가 꼼꼼하지 못한 물건은 수양이 덜된 노동자와 기업의 제품으로 배격 받았다. 이시다가 뿌린 노동정신은 오늘날 과도한 품질관리에 따른 고비용 구조를 낳았다는 비판도 받지만 주식회사 일본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세계시장을 휩쓰는 일본 제조업의 경쟁력에는 이시다 바이간이라는 거인의 숨결이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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