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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30일 '직무능력과 성과 중심 인력운영 가이드북(근로계약 해지)'과 '취업규칙 변경 지침' 초안발표를 강행한 것은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노동개혁 5개 법안(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기간제법·파견법)의 국회 처리가 사실상 물 건너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올 한해 내내 노동개혁을 외쳤지만 국회에 막혀 공염불이 될 상황에 처하자 노동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론화를 서둘렀다는 분석이다.
고용노동부는 특히 '쉬운 해고'라는 야당과 노동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통상해고의 기준과 절차를 '깐깐하게' 제시했다. 양대 지침을 통해 연공서열식 구조로 인한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해소하고 채용·근로조건·퇴직 등 근로계약 전반에 있어 능력중심 성과주의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확산시킨다는 방안이다.
가이드북 초안은 채용에서 퇴직까지 인력운영, 근로계약 해지 기준과 절차 등을 포함해 3개 파트로 구성됐다. 해고를 통상해고(일반해고)·징계해고·경영상해고로 구분하면서 업무부적응자나 저성과자에 대해서는 통상해고의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봤다.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정당한 이유 없이는 해고하지 못한다'고 추상적으로만 규정돼 있어 성과 부진자 해고를 둘러싼 분쟁이 많았다.
업무능력 결여에 따른 통상해고의 정당성을 갖추기 위한 핵심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로 보고 이를 구체화하도록 했다. 평가제도를 설계할 때 업무능력과 근무실적을 대상으로 하고 평가항목을 세분화하고 명확화해 논쟁의 소지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업직 직원에 대해 객관적인 영업실적보다 내부 직원의 다면평가 비중을 높게 하면 부당하다는 식이다.
평가항목은 자의적 평가가 최소화되도록 세분화하고 평가단계는 5등급 같이 다단계로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더불어 객관적인 수치로 나타나는 계량평가나 절대평가여야 타당하다고 해석했다. 최하위 등급에 의무적으로 일정 인원을 할당하는 상대평가는 합리성 인정이 어렵다는 얘기다.
이러한 수차례 평가에서 업무능력 결여가 상당기간 지속적으로 나타나거나 동일한 유형의 실수가 반복되면 교육훈련이나 배치전환 등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일시적인 업무 미흡을 이유로 해고하면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엄격한 요건과 절차로 지금보다 해고가 더 힘들어질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이 때문에 자의적이거나 정치적인 해석이 아니라면 결코 '쉬운 해고'와 '임금삭감'이 아니라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이 같은 정부 초안은 현행 법과 판례를 넘어서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현장에 배포될 가이드북에는 다양한 판례가 제시되면서 해고 관련만 150쪽이 넘고 전체 300쪽에 육박할 정도로 많은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그렇지만 판례에 충실한 만큼 한계도 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일부 사례를 갖고 보편화시키면 앞으로 뒤집히는 판결이 나올 경우 산업현장에 혼란을 줄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가이드북이나 지침으로 나오면 강제성도 없어 근로자와 사용자 간 소송전이 빈번해질 수도 있다. 더욱이 평가 등 인사노무관리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중소기업에서는 해고가 일부 남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양대 지침에 대해 노사 모두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어 향후 협의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법제화를 요구해온 경영계는 그동안의 법원 판결들을 정리하고 유형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아쉽다는 평가를 내놨다. 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기존 판결 사례를 획일적으로 정당성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처럼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인사관리 전반에 걸쳐 지켜야 할 기준과 절차를 새롭게 제도화하고 규제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도 이날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규탄 집회를 갖고 여론을 수렴한다는 형식적 명분 축적을 노린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반발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정부의 일방적인 지침 공개는 그 파급력을 감안할 때 사실상 지침시행이며 이는 명백한 노사정합의 파기이자 사회적 대화를 파탄 내는 행위"라며 전면적인 투쟁태세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전면 탈퇴까지 고려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내년 1월8일부터 총파업에 나서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