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그래픽뉴스] 직장인 그 누구도 희망하지 않는 희망퇴직




■ 입사까지 ‘8개월’, 나오는 덴 ‘15분’, 면담부터 퇴직까지 고작 1주일

제조업에 근무했던 직장인 A씨(28)는 다시 기업에 입사하는게 두렵다. 대학원 석사를 마치고 2년간 다녔던 회사에서 얼마 전 급작스런 희망퇴직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가 희망했던 일은 물론 아니었다. “조직통폐합이 먼저 됐어요. 화요일쯤 새로운 부서장을 뵀죠. 회사에서 희망퇴직 문자가 날아온 건 목요일이었어요. 그리고 금요일날 부서장과 면담을 했습니다.” 면담부터 퇴직까지 고작 1주일 걸렸다. A씨는 회사의 경영이 어렵다는 얘기는 꽤 오래 들어왔지만 아직 2년차인 본인이 퇴직 대상이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정말 허무한 건 서류 심사부터 2차 면접 후 최종 입사까지 8개월이 걸렸는데 면담하고 서류에 서명하고 부장 방 문을 나서는데 15분 걸렸어요. 대기업에 입사했다고 마음 놓고 차도 뽑고, 은행 대출도 받았는데...”


희망퇴직은 직원이 회사와 합의하에 보상을 받고 퇴직하는 것으로 권고사직이나 정리해고와는 다르다. 기업은 희망퇴직을 ‘권고’하고 그에 응하지 않으면 무급휴가나 차후의 보상금 없는 합의로 대응한다. 최근엔 연차나 직급 관계없이 회사의 기준에 따라 희망퇴직 대상이 되기 때문에 갓 입사해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A씨는 말한다. “전문성을 갖춘 인재가 되겠다고 석사까지 마치고 들어왔는데 능력을 보이기도 전에 내치니 앞으로 뭘 해야 할 지 막막합니다. 다시 준비할 수밖에 없는데 다시 기업에 들어가는 게 무서워지네요”



■ 평생직장은 옛말…회사에 대한 ‘기대감’ 낮아진 직장인들

실적 악화에 따른 기업들의 감원 한파가 몰아치면서 직장인들의 마음은 불편하기만 하다. 최근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1,34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10명 중 7명이 ‘고용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연령별로는 40대가 78.7%로 가장 높았고 50대 이상(78.4%), 30대(69.5%), 20대(63.8%)로 집계됐다. 미혼(67.3%)보다 기혼(72.8%)이, 여성(66.9%)보다 남성(70.4%)이 고용 불안을 더 심하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중간만 가자’는 풍조가 강했다. 당시 한 월간지가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39.4%가 직장에서 최고로 오를 수 있는 직급이 임원 이상일 것이라고 응답했다. 사회 전반에 깔려있던 ‘평생직장’이란 인식을 반영한 결과다. 하지만 지난 15일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1,859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시행 시 신청 의향’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3.7%가 ‘있다’고 답해 급변한 상황을 보여준다. ‘30대’가 66.8%로 신청 의향이 가장 높았고, ‘20대’(64.4%), ‘40대’(61.6%), ‘50대 이상’(40.9%)가 뒤를 이었다. 희망퇴직을 신청하고 싶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이미 퇴사할 생각을 하고 있어서’(52.2%, 복수응답), ‘어차피 오래 다닐 생각이 없어서’(38.6%) 순으로 답했다.



■ 점점 줄어드는 보상기준…낮은 노조 가입률도 한몫


희망퇴직 제도는 외국계 기업을 통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됐다. IMF 이후 기업들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어지면서 정리해고가 법으로 제도화됐고 1997년 은행가를 중심으로 희망퇴직이란 단어가 통용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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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구조조정의 보편적인 수단으로 활용되는 상황에서 보상기준은 점차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장동화 새빛 공인노무사 대표는 “공공기관의 경우 국가에서 지원을 받는 부분이 있어 퇴직 후 설계를 위해 1년이란 시간을 주기도 하고, 대기업의 경우 미리 준비한 자금이라도 있지만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보상기준이 거의 없다”라며 “적정한 보상을 위해서는 노조의 역할이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노동조합 가입률이 낮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0년 복수노조 설립이 가능해진 이후 기업 내부 노조가 많아졌지만 노동조합 가입률은 2011년 기준 9.9%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최하위권이다.

■ 재출발을 위한 여건, 정부와 기업이 보장해줘야

장기불황에 경영상황이 어렵고 경기전망도 어두운 상황에서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기업의 입장을 옹호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인력을 감축하기 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 선행되지 않은 ‘희망퇴직’ 남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 회사가 어렵다면서 최고경영자나 임원들에게 고배당을 하고, 무리한 M&A로 알짜기업이 적자로 돌아선 경영 실패의 책임을 직원들에게 돌리는 행태에 비난 여론이 쏟아지는 이유다. 감원만으로는 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는 기업의 인식전환, 불가피한 희망퇴직 시 적정한 보상, 재출발을 위한 지원 등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장 노무사는 “기업이 직원을 무작정 내보내기 전에 임금 동결, 배치 전환, 잔업 삭감 등 해볼 수 있는건 해보는 노력을 해야 한다. 몇몇 대기업의 경우 퇴직 후 이직을 도와주는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노무 컨설팅, 정신적인 상담, 기초 교육은 직업의 보장과 안정성을 위해 필수적이다”라며 “모든 기업이 희망퇴직 시 보상을 적정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퇴직 이후 재취업을 도와주는 정부 지원이나 제도 도입을 통해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movingshow@sed.co.kr

정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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