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파생상품 저주까지… 엎친데 덮친 원자재시장

에너지기업, 생산량 담보로 대출… 감산 못해 가격 반등 어려울 듯

헤지상품도 곧 만기… 연쇄 도산 경고등

원자재 기업들이 파생상품의 저주에 빠지면서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당분간 반등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에너지 기업들이 미래에 발생할 수익 등을 유동화해 자금을 빌리는 바람에 디폴트(채무불이행)를 피하고 원리금을 갚으려면 적자가 나더라도 생산량을 늘릴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렸다는 것이다.

29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 기업들의 디폴트 비율이 내년 9월 3.6%로 1년 전보다 1.1%포인트 급증하고 이 중 상당수는 에너지 기업들이 차지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미 올해에만도 파산보호를 신청한 전 세계 에너지 관련 기업은 58개로 지난해의 20개에서 급증하며 지난 2009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중국 등 신흥국 경기가 둔화된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의 감산불가 방침으로 국제유가가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브라질·노르웨이 등 다른 산유국도 예상보다 생산량을 늘리면서 석유수출국기구(OPEC)마저 공급과잉 사태를 막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미국 등의 원자재 기업들도 파생상품의 덫에 걸려 생산조절력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원자재 기업들은 광산·유전 개발, 인프라 투자 등을 위해 미래 생산량을 담보로 대출을 일으켰다. 특히 헤지펀드 등이 원자재를 담보로 각종 파생상품을 만들고 레버리지를 일으켜 투기세력들을 끌어들였다.

시장조사 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미 석유·가스 기업의 순부채는 올 6월 말 현재 1,690억달러로 2011년 말의 800억달러보다 2배 이상 늘었다. 2000년 이후 2,000개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의 투자규모는 1조5,000억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 하락이 악순환을 몰고 왔다. 금융 리스크 전문가인 사트야짓 다스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에 "원자재 기업들이 현금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생산량을 고수하는 바람에 가격 반등이 지연되면서 적자 증가와 자산가치 하락, 신규 대출의 어려움 등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더구나 과거에 손실을 막아주던 헤지상품의 만기도 속속 돌아오고 있다. 미 셰일 업체들은 올해 생산량의 절반 정도를 헤지했고 30%는 현재 국제유가의 2배 이상인 배럴당 83.8달러에 헤지했다. 하지만 손실 증가로 투자가들이 기피하면서 내년 헤지 물량은 전체 생산량의 15%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다스는 "파생상품 증가 등 금융화 진전과 가격 하락이 맞물려 원자재 기업들의 현금 유동성이 취약해지고 도산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파장은 대형 에너지 기업에까지 미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이날 아시아 최대 원자재 중개업체인 노블그룹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강등했다. 올 3·4분기 순익이 84%나 급감하면서 현금 유동성이 우려된다는 게 무디스의 설명이다. 나아가 미국 2위 천연가스 업체인 체사피크에너지가 내년 1월1일 무담보채권 30억달러어치를 신규 채권으로 교환하는 데 실패할 경우 에너지 기업의 연쇄도산 경고음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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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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