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꿈은 유엔사무총장이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유엔사무총장이 나오더라고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보면서 내 인생에 한국에서 다시 한 번 유엔사무총장이 나올 일은 없겠구나 싶어서 꿈을 접었어요."
"영국 록그룹 콜드 플레이(Coldplay)를 정말 좋아하는데 내한 공연을 한 적이 없어요. 한국에도 콜드플레이 공연을 보고 싶은 팬들이 많거든요. 이런 수요가 있다는 것을 전달하고 공연을 성사시켰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공연 수요 예측 플랫폼 '마이뮤직테이스트'를 개발하며 공연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동시에 K팝 전도사, 스타트업을 원하는 청년들의 워너비(wannabe)가 된 이재석(32·사진) JJS미디어 대표. 팬들은 마이뮤직테이스트 웹사이트와 앱을 통해 아티스트의 공연을 요청할 수 있고 이를 통해서 정확한 수요 예측이 가능하다. 주로 K팝 아티스트의 해외공연 수요 예측을 하고 있으며 플랫폼 및 웹사이트 가입자는 50만명가량이다. 그동안 인피니트(바르샤바·베를린·파리 2,500~3,000명), 블락비(헬싱키·파리·밀란·바르샤바 2,000~2,500명), 에픽하이(로스앤젤레스, 2,500명) 등의 해외 공연을 진행했다. 마이뮤직테이스트를 통해 6만여 명이 EXO(엑소)의 북미 공연을 요청해 엑소의 북미 투어도 예정된 상태다.
경험한 것 중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이 없다며 스스로를 경험주의자로 정의 내린 이 대표. 실제로 그는 좌절과 희망을 포함한 모든 경험들을 재활용해 자신의 현재를 만들고 있었다. 계속해서 꾸고 있는 꿈들은 물론 실패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도 특유의 밝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청춘이나 청년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은 가볍게 다가오지 않는 2015년의 현실과 그의 노력과 웃음이 오버랩되는 순간, 탯줄 계급인 금은동·흙수저가 아닌 '나'라는 '장인'이 한칼 한칼 깎은 '나무수저'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물론 이 '나무수저'는 영어 숙어에서 간혹 쓰이는 꼴찌의 의미는 전혀 아니다.
그가 유엔사무총장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글로벌하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일들을 꿈꿔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이뮤직테이스트 이용자의 97%는 해외 이용자들이고 국내는 3%밖에 되지 않는 글로벌 플랫폼으로 어느 정도는 그의 꿈을 이룬 셈이다. "저희 회사에는 미국·중국 등 다양한 국적의 직원들이 근무해요. 유엔사무총장을 포기하기는 했지만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꿈을 이뤄 가고 있어요. 전체 미팅을 할 때도 영어로 진행하거든요. 해외 팬들이 먼저 저희 플랫폼을 활용하기 시작해 해외에서 공연을 처음으로 열었어요. 공연 문화를 바꾸기 위한 캠페인 등도 진행하고 있어요."
부모님 세대가 일자리를 찾는 시대를 살았다면 2030은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부모님 세대를 'Job-seeker', 2030을 'Job-creator'로 표현했으며 이러한 운명에 따르고자(?) 창업을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모님 세대와 저희 세대의 환경이 다르듯 일자리에 대한 개념도, 창업 스타일도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30년간 대기업에 다니다가 은퇴한 후에 비슷한 업종의 작은 회사를 차려서 납품해도 부모님들은 살아남았다면 저희 세대는 그럴 수가 없어요. 자신만의 전문 분야를 만들어서 창업해야 해요. 저는 음악을 좋아해서 음악과 제 전공인 공학을 접목해서 플랫폼을 만들었듯 쿠키에 전문성을 가진 누군가는 쿠키 장사를 하든, 쿠키에서 파생된 어떤 사업을 하든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창업을 하면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첫 공연이었던 일본 재즈 힙합 아티스트 리플러스의 내한 공연을 마치는 날 업체에 잔금을 치러야 하는데 마이너스 통장도 이미 한도를 넘는 상태였던 것. "제 바닥을 봤죠, 300만원이 없어서 잔금을 못 치르고 있었어요. 은행 창구 담당 대리님에게 제가 가진 것을 담보로 잡아서 300만원 더 해줄 수 없느냐고 물었는데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친한 선배님에게 연락해서 300만원을 빌렸어요. 1년도 안 된 이야기에요."
잔액의 바닥은 이때 봤는데 회사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바닥을 본 후에는 팀 멤버마다 각자 건드리면 안 되는 포인트가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을 보면 강혜정이 꽃을 꽂고 다니는데 그것을 건드리면 미치잖아요, 그런 포인트는 누구나 있어요. 멤버들에게 어느 포인트를 건드리면 미치느냐고 다 물어봐요. 근데 그것을 깨부숴서 성장할 수 있으면 깨부숴야 하고 깨부수지 않고 지켜줘야 하면 지켜줘야 해요. 저는 자존심이 굉장히 센데 우리 회사·플랫폼·유저·팀원을 욕하면 못 참아요."
JJS미디어의 핵심 가치관은 '존경(respect)' '설득(persuade)' '실행(execute)' '전문성(professionalism)' '희생(sacrifice)' 다섯 가지다. "조직에서 타협이나 협상이 있으면 안 돼요. 타협이나 협상이 생기기 시작하면 사내 정치도 함께 시작돼요. 내가 지금 네가 할 일을 해줄 테니 다음에 네가 나를 좀 봐줘라가 아니라 왜 지금 네가 내 일을 도와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득해야 해요. 각자의 역할과 업무에 대해서 존경해야 해요, 회의 때 "지금 나를 존경하고 있는 거냐?"라고 저희는 서로 묻기도 해요.(웃음) 그리고 소통을 통해 얻은 결과를 실행해야 하고 또 실행 과정에서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프로다움도 가져야 하고 또 팀이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희생도 있어야 해요. 이런 것도 다 제 생각은 아니고 각 팀장들이 의견을 내서 뼈대를 만들고 살은 붙였어요."
팀워크와 팀 정신을 핵심 가치로 삼은 것은 학부시절 대기업 인턴십 등을 거치면서 대기업 문화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대기업 임원들을 보면서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꼈다는 것. "임원들이 되면 남아 있는 동기들이 없더라고요. 동기들을 다 제치고 그 자리에 올라간 거니까요. 그래서 늘 경쟁과 외로움과 싸운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그런 종류의 외로움을 견딜 수 없을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대기업 정착은 생각하지 않았고 창업을 하게 되도 경쟁을 통한 서열 구조를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경쟁과 정치보다는 멤버들과 함께했을 때 힘이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하루만 지나면 한국 나이로 33세가 되는 이 대표의 인생 목표는 소박하기도 했고 원대하기도 했으며 초연하기도 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 하고 좋아하는 도전을 계속할 수 있었으면 해요. 좋아하는 도전이라는 것은 사회, 그리고 나아가 인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요. 돈은 많으면 좋겠지만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게 돈이란 거죠."
사진=송은석기자
"20대 많은 경험이 창업 밑거름 됐어요" 연승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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