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6월9일] 새뮤얼 슬레이터

새뮤얼 슬레이터(Samuel Slater). 미국 제조업의 출발점이자 영국의 반역자다. 조국의 첨단기술을 외국으로 빼돌려 치부한 산업 스파이. 부농의 아들로 1768년 6월9일 영국 더비셔에서 태어난 슬레이터는 어려서부터 공장주 수업을 받았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수력방직기를 발명한 아크라이트의 동업자였던 면직 공장주 밑에서 7년간 도제수업을 받은 것. 덕분에 생산기술에서 경영까지 전과정을 익혔다. 교육을 마친 그는 1789년 고향을 등졌다. 행선지는 미국. 영국의 적성 국가였다. 항구를 빠져나올 때 그는 농부라고 속였다.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설비는 물론 직공의 해외여행까지 금지되던 시절이다. 신세계에 발 디딘 21세 젊은이는 빈손이었지만 머릿속 지식이 자본을 불렀다. 도착 2년 후 결혼한 첫째 부인은 부유한데다 바느질 실까지 개발하며 힘을 보탰다. 1973년 로드 아일랜드에 영국식 방직공장 설립. 미국 최초의 근대식 공장은 해밀턴 재무장관의 각별한 관심 속에 뿌리를 내렸다. 1803년부터는 자기 돈으로 영국보다 훨씬 크고 개량된 방적공장을 세웠다. 노동자 기숙사와 학교ㆍ구내매점도 선보였다. 노동력의 대부분을 차지한 7~12세 아동을 주급 25센트~1달러에 하루 12시간씩 부린다는 비난 속에 그는 1835년 67세로 사망할 때 유산 120만달러를 남겼다. 그의 성공은 자본가들을 고무시켰고 신생 미국은 공업국가로 올라섰다. 불법 복제한 기술로 산업화에 착근한 경험 때문인지 오늘날 미국은 지적재산권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한국은 선진국에 집중 견제받으면서도 대문까지 단속해야 할 입장이다. 반도체 등 첨단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방심하면 도둑맞는다. 슬레이터에게 당했던 영국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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