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2월6일] 먼로독트린

[오늘의 경제소사/12월6일] 먼로독트린 '신성한 문라주의(文羅主義)가 백기를 들고…(중략) 세계무대가 제국주의적 활극장을 성(成)하였도다.' 단재 신채호가 남긴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일부다. 신성한 문라주의란 먼로독트린(Monroe Doctrine). 지난 1820년 12월6일 미국 5대 대통령에 당선된 제임스 먼로가 내건 외교정책이다. 먼로의 당선에는 1802년 경제위기 극복의 주역이었다는 점이 한몫 했다. 위기의 원인은 대외무역의 40%를 차지하던 뉴올리언스항의 봉쇄. 경제가 휘청거리자 미국은 프랑스로 사절단을 보낸다. 목표는 뉴올리언스 기항권 획득. 사절단 대표 먼로는 나폴레옹과의 담판에서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루이지애나를 통째로 매입한 것. 한반도의 10배가 넘는 땅을 단 1,500만달러에 사들였다. 서부가 활짝 열렸다. 서부개척의 일등공신인 먼로는 1823년 '미국이 유럽에 간섭하지 않을 테니 유럽도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를 더 이상 만들지도, 간섭하지도 말라'는 외교정책을 발표한다. 중남미를 영향권에 두겠다는 얘기다. 유럽의 파나마운하 건설 시도도 미국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됐다. 먼로 당선 후 84년이 지난 1904년 12월6일, 시어도어 루스벨트(26대) 대통령은 미주 대륙의 분쟁시 '경찰' 자격으로 개입하겠다는 '신 먼로독트린'을 선포한다. 아이티와 니카라과, 도미니카공화국을 10년 이상 무력으로 불법 점거한 것도 여기에 연유한다.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27대)은 '달러외교(Dollar Diplomacy)'를 표방하며 남미국가를 경제적으로 예속시켰다. 침탈의 뒤에는 언제나 먼로독트린이 있었다. 먼로독트린은 '신성한 민족자결과 고립주의'가 아니라 '변형된 제국주의의 시발점'이었던 셈이다. 권홍우ㆍ경제부차장 입력시간 : 2004-12-05 17:30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