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MB정부 정책 우선순위 성장서 물가로 궤도수정

유가·물가 고공 행진에 금리인하 명분 사라지고 여론 따가운 눈총도 부담 <br>정부 압박 짐 던 한은 금리결정 선택폭 넓어져

기획재정부가 열석발언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당분간 한은에 금리인하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얘기로 사실상 성장에서 물가로 정책 우선순위를 궤도수정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최근 매도개입에 나서며 고환율 정책에서 한 걸음 물러난 모습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특히 이 같은 발언이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단합모임을 가진 뒤 나와 사전에 청와대의 조율 아래 양 기관이 물가에 포커스를 맞추기로 협의, 대립체제에서 협조체제로 돌아선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열석발언권 정부 입장 돌변=지난달 말 최중경 기획재정부 1차관은 느닷없이 ‘열석발언권’을 꺼내들었다. 금융통화위원회의 독립성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거의 사문화됐던 법을 들먹인 것은 금리정책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도였다. 성장을 위해서는 금리인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정부 입장으로, 이를 관철시키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금통위 회의 당일 불필요한 오해를 우려해 참석을 보류하기는 했지만 최 차관은 적당한 타이밍에 법에서 보장한 열석발언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최근 정부는 열석발언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발언권을 행사할 경우 금리가 오르든 내리든 구설수에 오르는 것은 물론 최근 경제상황도 한달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유가 급등으로 고물가 충격이 서민경제를 강타하고 있는 마당에 금리인하를 요구할 명분이 사라진 것이다. ◇금리 동결 유력해져=정부가 열석발언권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금통위의 금리 결정 부담이 한층 덜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몇 개월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전광우 금융위원장,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 등 정부 관료들이 총출동해 금리인하를 채근, 한은을 압박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유가가 130달러를 넘어서고 물가가 급등하고 있는 마당에 금리인하는 자칫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키워 물가상승을 자극할 수 있어 한은은 눈총을 받으면서도 금리 동결을 선택해왔다. 그러나 금리 결정의 중요 변수였던 정부 압박의 짐을 덜었기 때문에 당분간 한은은 별다른 눈치를 보지 않고 금리를 결정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유가가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는데다 5월 소비자물가도 4%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돼 6월 기준금리는 5.0%로 동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금리인상 카드는 성장론 훼손이라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에 아직 꺼내들기에는 이르다는 지적이다. ◇성장보다 물가 정책 펼칠 듯=최근 고환율 정책이 후퇴할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열석발언권 포기 발언까지 나오면서 정부가 성장보다 물가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관측이 더욱 확실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최근 “물가 상승에 환율까지 오르면 서민들이 받을 타격이 엄청나다. 이 부분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며 정책 기조가 당분간 물가 쪽이 중심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한은 관계자 역시 “최근 청와대 관계자가 이성태 총재, 강만수 장관과 만나 정책 조율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아마 물가ㆍ금리ㆍ환율 등과 관련해 어느 정도 협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정부가 성장에서 물가로 정책 스탠스를 고쳐 잡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며 “하지만 물가가 안정되면 성장정책을 다시 전면에 내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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