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신용도 곤두박질/“북 위기에 대처할 뚜렷한 능력없다” 평가도 원인으로【뉴욕=김인영 특파원】 미국은행에서 한국 대출창구를 맡고 있는 임원들은 올들어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맡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1년전만 해도 한국 은행들에 저리의 이자로 돈을 가져가라고 떠밀어도 남아났는데, 이제는 빌려 달라고 해도 줄 여지가 없다고 푸념들을 한다.
기아 그룹에 대한 정부 고위관료들의 강도 높은 발언이 한국에 대한 미국 은행들의 대출금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강경식 부총리나 김인호 경제수석의 발언 강도가 약해서가 아니라, 이미 한국에 대한 대출금리가 오를 대로 올랐기 때문이다.
9월말에 접어들면서 기아 사태와는 다른 이유에서 한국물에 대한 미국 은행의 대출금리가 또다시 상승하고 있다. 오버나이트에서 한달 미만의 단기물의 경우 한달 전까지만 해도 LIBOR(런던 은행간 금리)+0.4%였으나,9월말에는 LIBOR+0.5%로 0.1% 포인트나 상승했다. 신용도가 떨어지는 하위 은행에는 LIBOR+1.0∼1.1%까지 단기물 금리가 치솟았다.
이달 들어 이른바 한국 프리미엄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은 미국 시중은행들이 중앙은행에 국가별 신용잔액(Country Exposure)을 보고할 시한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은행은 1년에 4번씩 매분기말(3.6·9.12월)에 각국에 빌려준 대출금 액수와 금리, 국가별 신용도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보고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보고 시한을 앞두고 한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을 느낀 일부 미국 은행들이 한국에 대한 대출 한도를 줄이고 있고, 일본은행의 반기별 결산기가 이달말에 겹치면서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 프리미엄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미국 채권시장에서 지난 10일 산업은행의 글로벌 본드 15억 달러 발행 이후 한국물들이 잇달아 노크하고 있다. 삼성전자 4억8천만 달러, 한전 1억5천만 달러, 현대 2억 달러, 대우 5천만 달러, 가스공사 7억∼8억 달러의 본드 발행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은행 본드가 1년전보다 0·5%나 오른 금리에 당초 계획(10년)보다 짧은 4년짜리와 7년짜리를 내놓음으로써 물량 소화에 바빠 가격(금리)과 기간을 포기했다는 것이 미국 금융가의 시각이다. 따라서 뒤에 나오는 채권도 종전보다 높은 금리와 짧은 상환기간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북한의 식량난, 악화되고 있는 남북관계도 침체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만큼이나 한국에 대한 신인도를 악화시키고 있다. 유종하 외무장관은 24일 뉴욕에서 『남북한 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에 대한 신용도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미국 은행과 접촉하고 있는 한국 은행 담당자들은 협상 끝머리에 늘 북한이 급격히 붕괴하면 한국 경제가 이를 보장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한국 경제는 구조조정을 거치면 재기할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북한의 위기에 대해 한국이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미국 은행들은 낮은 점수를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