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만의 정권 교체를 이뤄냈던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2일 사퇴 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일본 정국이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는 '관료중심의 정치 타파'와 '경제 부흥'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단명 총리'로 끝나고 말았다.
외신들은 "하토야마 정권에 대한 지지율은 출범 당시만 해도 70%를 웃돌았으나불과 8개월 여 만에 20% 밑으로 떨어졌다"며 "일본의 정치 개혁과 경제 회복이 더욱 요원해졌다"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의 퇴임은 자민당의 반세기 아성을 무너뜨린 민주당 역시 활력을 잃은 일본의 정치와 정책입안 과정을 변화시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토야마의 퇴진을 가져온 직접적인 원인은 오키나와 현에 자리잡은 후텐마 미군 기지의 이전 문제였다. 총리는 이 기지를 오키나와 현 밖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처리 시한까지 못박았으나 기지는 이전하지도 못한 채 미ㆍ일 동맹만 약화시키는 악수를 뒀다. 이에 따라 정권 지지율은 추락했고, 내달 참의원(상원) 선거 때 지지할 정당을 묻는 조사에서도 처음으로 자민당에게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국민들이'아마추어 정권'에 염증을 표시하며 "국가적 위기 국면에서는 경험이 많은 자민당이 낫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정권의 개혁 의지가 자금 스캔들 등으로 빛을 잃은 것도 지지율을 떨어뜨린 또 다른 배경이다. 총리는 이날 정치자금 스캔들에 대한 책임을 물어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에게 동반 퇴임할 것을 요구했고, 오자와 간사장은 이를 수용했다. 당내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오자와 간사장은 공천 및 정부 운영을 좌지우지하며 당의 이미지를 얼룩지게 만들었다. 뉴욕타임스(NYT)는 "개혁 의지가 부족한 오자와 간사장과 쌍두마차를 형성한 총리의 우유부단이 미국과의 갈등으로 더욱 부각됐다"고 평가했다.
경제 회복이 더딘 것도 국민들의 실망감을 키웠다. WSJ는 "일본 국민들은 20년간의 저성장의 책임을 물어 정권을 교체했지만 이번에도 일년을 넘지 못했다"며 "정치 개혁도 경제 살리기도 난맥을 보이고 있다는 것만 드러낸 셈"이라고 평했다.
물론 민주당이 총리를 선출하는 중의원(하원)에서 다수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총리가 사임해도 정권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후임으로 거론되는 인물중에서 현실 정치 역량과 개혁 실천 능력을 겸비한 리더를 찾기 어렵다는 게 고민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총리 퇴임의 목적은 오자와 간사장을 새 체제의 중심에 두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새 대표가 그의 영향력을 제거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총리의 퇴임으로 일단 민주당 지지율은 회복세로 돌아설 발판을 마련했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하지만 내달로 예정된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안정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정국 혼란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