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30일 실시된 순천·곡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는 여당(김대중·노무현 정권 제외) 후보로는 최초로 호남지역에서 당선돼 파란을 일으켰다. 영남과 호남으로 양분된 지역패권주의 구도에서 상대방의 텃밭을 차지하기는 그만큼 쉽지 않은 것이 국내 정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에서 가동되고 있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망국적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선거구제 개편과 함께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제 도입 등을 그 무엇보다 우선과제로 논의하고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 도입하면 다당제 구도 출현 가능성=우리 정치권을 '3류 정치'에 머무르게 한 지역주의를 타파할 수단으로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 정당별 전국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전국구 비례대표제와 달리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지역을 나눠 해당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얻은 표의 비율만큼 비례대표 의석을 나눠 갖는다.
지난달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직선거법 개정 의견을 제시한 후 정개특위에서도 정당별 찬반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선관위는 국회의원 정수를 현행 300명으로 유지하되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2대1의 비율로 나누고 전국을 6개 권역으로 구분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을 제안했다.
선관위 방식을 입법조사처가 19대 총선 득표율에 적용(무소속 3석 제외 총 297석)해 분석한 결과 새누리당은 총 137석으로 15석 줄고 민주통합당(현 새정치민주연합)도 127석에서 117석으로 10석이 감소한다. 반면 통합진보당은 9석에서 33석으로, 자유선진당은 9석에서 10석으로 늘어난다. 양당 구도에서 군소정당의 의석 수가 늘어나 다당제 구도로 전환되는 것이다.
지역독식구도도 깨져 새누리당 '호남' 비례대표와 새정치연합 '영남' 비례대표도 다수 배출된다. 영남권 비례대표는 새누리당 16석, 새정치연합 7석이 배분되고 호남은 새정치연합 7석, 새누리당 1석을 갖게 된다. 지난 총선 당시 영남에서 3석을 얻은 새정치연합은 의석 수가 껑충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적극적으로 제도 도입을 요구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은 절대적으로 분리해 난색을 표하고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여당은 과반의석 확보가 어려워지고 야당은 다당제 구도 출연으로 연정을 통해 정국 주도권을 쥘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금의 양당구도와는 확연히 다른 상황이 도래하는 셈이다.
◇석패율 도입 여부도 관심=권역별 비례대표제와 함께 관심을 받는 것이 석패율이다. 석패율은 같은 시도에 출마한 후보 중에 2명 이상을 비례대표 후보로도 추천해 지역구에서 낙선하더라도 상대득표율이 가장 높은 사람을 비례대표에 당선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지난 총선에서 대구에 출마해 40.4%를 득표하고도 낙선한 김부겸 전 의원(당시 민주통합당)은 지난 8일 한 강연에서 "여야가 노력하면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는 할 수 있다"면서 "야당이 영남지역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 예산까지 따낼 수 있도록 중앙당이 시도당 등 지방에 권한을 주고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은 9일 의원총회에서 석패율제 도입 등을 남은 혁신안을 추인했고 새정치연합도 적극적인 찬성 입장이다.
반면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 유력 정치인의 경우 지역구에서 낙선해도 비례대표로 당선될 수 있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현행 제도하에서 석패율제를 도입했을 때 이자스민·은수미 의원 같은 비례대표의원이 다시 탄생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각계 전문가나 직능대표를 등원시키는 비례대표제의 취지 희석을 우려했다.
권역별 비례대표와 석패율제가 도입되면 현재 국회의원 의석 수를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할 때 비례대표 의석이 상대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어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하다. 야당에서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400석을 거론하고 심상정 대표가 의원 정수를 360명으로 하는 입법청원을 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선거구제 개편과 함께 국회의원 정원 문제에 대한 치열한 논의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