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데스크칼럼] 판검사와 보통사람

『판검사가 부정 비리를 저지르면 누가 수사하고 재판하지.』『그야 물론 판검사들이 하지.』 『그게 제대로 될까.』 지난해 사정한파가 한창일때 어떤 모임에 참석했다가 들었던 이야기다. 대전 이종기변호사 수임관련 법조계 비리가 불거졌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게 바로 그 대화였다. 쓴 웃음이 나온다. 역시 「제대로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李변호사로부터 향응을 받은 검찰간부가 수사팀을 지휘했던 상황에 이르러서는 아예 말문이 막힌다. 그나마 그런 사실을 밝혀내 중도에 교체한 것이 다행스럽다. 수사결과가 곧 발표된다고 하니 두고봐야 알겠지만 현재까지의 상황으로 보면 일반시민들의 예상을 크게 벗어날 것같지 않다. 향응을 받은 사람은 징계, 돈을 받은 사람은 옷을 벗기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모양이다. 당초의 처리방침보다는 강도가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여론은 여전히 냉소적이다. 속된 말로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라는 반응이다. 일부에서는 재수사와 사법처리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사법부와 검찰로서는 속이 바짝바짝 탈 일이다. 뇌물죄로 사법처리를 위해서는 금품수수의 직무관련성, 대가성이 있어야하는데 그것을 밝혀내기가 쉽지않고 게다가 해당자들이 사법처리는 커녕 사표제출에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 연루자들 뿐만 아니다. 상당수의 일선 판검사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자성을 하면서도 이같은 여론, 특히 언론에 대해 강한 불만을 털어놓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법조계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그들의 반발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판검사도 사생활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옥석구분없이 법조계 전체를 「도매금」으로 매도하며 몰매를 때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항변에도 일리가 있다. 먼저 사생활론이다. 판검사는 법을 집행하고 판결하는 사람이지만 그들역시 인간이다. 일만 하며 살수도, 혼자 살수도 없는게 세상 이치다. 근무시간이 끝나면 친구 등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리스트에 오른 전현직 법조인들은 대부분 李변호사와 친구 또는 학교·법조계 선후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李변호사가 식사 또는 퇴근후 한잔하자고 연락해 왔을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응했을 것이다. 선후배가 한번 만나자고 했을때 이를 거절하는 사람이 과연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판검사라는 이유만으로 친구·선후배와의 교류도 끊고 살라하면 그것은 너무 지나친 요구다. 다음은 도매금론. 어느 조직이나 문제의 일부가 있는게 현실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묵묵히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지만 이들 일부로 인해 전체가 흙탕물을 뒤집어 쓰곤한다. 법조계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런데 일부를 가지고 전체 법조인들을 범법자로 몰아붙이니 판검사들로서는 억울할만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사건을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판검사들은 범부와 마찬가지로 인간이지만 보통사람과는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민의 재산과 인신의 자유를 다루고 나아가 생사여탈권(물론 그것이 법에 따른 것이지만)까지 갖고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보통사람 보다 훨씬 높은 도덕성과 직업윤리가 요구된다. 이것이 바로 보통사람에게는 향응·금품 수수의 대가성 여부를 따져도 판검사들에게는 따질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실이나 돈의 유혹에 흔들려서는 공정한 수사와 판결이 이뤄질 수 있겠는가. 사건이 터진후 시민단체들의 시위에서 「도적놈 판검사」라는 피켓이 등장할 정도로 판검사의 권위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들의 권위실추는 곧 법의 권위 실추이며 이것은 사회질서와 정의의 붕괴로 이어진다. 이제 사법부와 검찰은 스스로에게 단호해져야 한다. 조직으로서, 또 판검사 개개인으로서도 자신에게 엄격해져야 한다. 자기살을 도려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런 일이다. 그러나 그 아픔이 두려워 적당히 처리하고 넘어가면 병은 재발하고 더욱 깊어진다. 법조계가 읍참마속의 심정을 되새겨 주기 바란다. 그것이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사법정의를 위해 묵묵히 일하는 대다수 판검사들의 명예와 권위, 나아가 법의 권위를 세우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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