귄터 슈스터 씨멘스 사장
그는 한국을 잘 아는 외국기업 CEO(최고경영자)중 몇 손가락 안에 항상 꼽힌다.
한국 생활만 10여년째를 맞았으며 이런 저런 관계까지 따지면 무려 33년째 한국과 인연을 맺고 있는 인물.
올해초 독일 바바리아 주정부가 30여명 규모의 북한투자단을 구성해 놓은 채 인솔 적임자로 가장 먼저 찾았던 사람.
귄터 슈스터(Guenter Schusterㆍ60)씨는 올해로 만 9년째 씨멘스 한국법인 사장을 맡고 있다. 씨멘스는 해외법인 CEO에 대해 평균 5년정도의 임기를 보장해 준다는 내부 경영방침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해도 상당히 비중이 높은 시장을 10년씩 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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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멘스는 오는 10월이면 한국 진출 만 30년을 맞는 독일계 전기ㆍ전자업체. 전세계에서 연간 100조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이 가운데 1%를 약간 밑도는 7,000억원의 매출을 한국에서 올리고 있다. 슈스터사장은 한국 진출 초기 300억원 정도였던 씨멘스 한국법인의 매출을 지난해 7,000억원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한국과 그 속에서 커가는 회사를 지켜보다 보니 어느새 훌쩍 10년이상 흘러가 버렸어요."
엔지니어로서 그가 처음 서울에 왔던 때는 지난 67년에 한강은 그저 모래섬이 드문드문 보이는 작은 강에 불과했다. 지금은 흘러넘치는 자동차도 당시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서울은 세계적인 기업들이 앞다퉈 진출하는 비즈니스 중심지가 됐습니다. 씨멘스만 해도 초창기 10여명에 불과하던 직원이 이젠 1,500여명에 이를 정도로 큰 성장을 거뒀지요."
한국의 성장속도에 대해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 반도체, 전기ㆍ전자, 자동차, 조선 분야등 산업 전 분야에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한국의 모습에는 긴장감을 감추지 못할 정도.
이젠 어떤 기업도 단순노동집약(로우엔드ㆍLow-end) 기술만으로는 한국 시장에서 버틸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근 씨멘스가 ECU를 비롯한 자동차 전장 부품, 공장자동화, 정보통신 네트워크 제품 등 하이테크 기술개발과 시장 공략에 주력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그동안에는 터빈ㆍ발전기ㆍ송배전 제품 등 씨멘스의 트래이드 마크였던 제품을 주로 공급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 한국기업과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어요.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하이테크 제품 개발과 시장 공략에 더욱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지요."
그는 타이완이나 다른 동남아국가에 비해 전 산업이 고르게 발전했다는 점도 한국 시장 성장 가능성을 높게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 같은 무한한 가능성 때문에 CEO로서 한국에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다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그는 지난 98년부터 한독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으며 한국 독일간 경제교류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올초에는 30여명의 독일 투자단을 이끌고 북한에 다녀오기도 했다.
"아직은 인프라 부족으로 투자에 어려움을 예상하고 있지만 시장에 대한 가능성만은 높다"는 게 북한에 대한 그의 평가.
어느새 강원도 토박이 산골 이장과 같은 소탈함과 지혜를 풍기는 그에게도 한국 생활10여년동안 시련이 없을 수 없다.
지난 88년 한국에 처음 부임하자 마자 씨멘스 사무실이 강성 노조원들에게 점거되는 충격적인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결국 해결되긴 했지만 3개월이라는 긴 파업이 이어지면서 독일인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을 겪었다.
'직원은 물론 고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들과 밀접한 휴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야 말로 비즈니스의 근본'이라는 경영 철학은 그가 겪었던 호된 신고식의 교훈이다.
"30여년 넘게 한국과 인연을 맺으면서 많은 친구를 얻었지만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진정한 벗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슈스터 사장.
은퇴하면 고향에 돌아가 자식과 함께 전원생활을 즐기고 싶다는 것이 그의 작은 소망이다.
그는 "외국기업 최고 경영자로서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고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10년도 결코 충분한 세월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 Life Story
독일 쿨름바흐에서 태어나 프리에르베르크 포리테크닉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65년 엔지니어로 씨멘스㈜에 첫발을 내딛은 뒤 69년 아시아 국제사업본부 이사를 거쳐, 88년 전력설비사업본부 이사로 한국에 부임, 92년 사장에 취임했다. 98년부터 한독 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다.
홍병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