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도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 뿐이더라/낯선 친구 만나면/우리 문둥이끼리 반갑다/천안 삼거리를 지나도/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한하운’, 전라도 길
전국이 난립니다. 아마 현대에 들어와서 전염병으로 인해 모두가 마음 졸이는 모습은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유행성출혈열, 독감 등 다양한 전염병이 있었지만, 국민적인 공포를 환기하는 질병은 많지 않았습니다. 몇 년 전 홍콩에서 창궐했던 ‘사스(SARS)’에 이어 ‘메르스(MERS)’가 맹위 아닌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역학적으로 질병 자체의 영향력보다도 사회심리적인 효과가 더 큰 것 같습니다. 지도자까지 무력하게 만드는 전염병이니까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사실 미디어에 곧잘 등장하는 메르스 관련 보도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병에 걸리지 않은 이들이 조심하게 하기 위한 소식이 많습니다. 예방 위주의 접근이라는 것이죠. 정책적인 측면서는 매우 당연한 관점이기도 합니다. 전염병은 일단 초기 보균자들이 더 많은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자가격리나 병원 수용 등을 통해 철저히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메르스 환자들도 우리 국민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정말 미디어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각 지자체장들은 앞다투어 메르스 환자의 입원 병원과 사는 곳 등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정치적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는 하지만 환자를 함께 공감하고 마음을 나눠야 할 국민이 아니라 그저 관리 대상으로 바라봤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느 tv 와이드쇼와 전화 인터뷰를 했던 ‘35번 확진 판정 의사’는 자신의 행적을 알렸던 박원순 서울시장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기까지 했습니다. 언사와 표현 자체는 부적절했지만, 그 의도는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상처받은 것입니다. 이재명 시장이 페이스북에 환자의 신원을 추정할 수 있는 정보를 올린 것도 큰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선제적인 정보 공시라는 점에서는 시사점이 있겠지만, 환자 또한 그가 지켜야 할 성남시민이라는 점은 간과된 행동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우리가 질병 자체보다 더 두려워 해야 할 것은, 그로부터 안전해야 할 국민들의 정신건강이 아닌가 싶습니다. 남이 아픈 것을 보고 자신이 그렇게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조심하는 것,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남의 불행을 기피와 관리의 대상으로 보고 나의 안위만 염려하는 것은 이기주의입니다. 국가가 진정한 공동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라면, 국민들이 서로 배려하고 보듬어 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진영을 막론하고 우리 사회의 리더들에게는 ‘메르스’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진심어린 위로와 도움의 손길을 약속하는 덕목은 부족했습니다. 아직 백신이 개발되려면 한참 남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사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일까요.
기자가 오늘 칼럼을 쓰기 전에 잠깐 인용했던 한하운 시인의 ‘전라도 길’은 한센병으로 인해 육체적 고통 못지 않게 정신적 고통을 받았던 어느 환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먼 길을 걷고 나면 신체의 일부가 떨어지고 없는 물리적 상황이 아닙니다. 오히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그를 붙들어 주고 위로해 주는 이 하나 없는 처절한 현실이 더 아픈 것입니다. 메르스는 단순 생리학적 질병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질환임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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