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5/17(토) 쾌청
뫼솔 산악회 (45인 승 2대)
경북 봉화군 소재 청량산
양재(07:10) – 원주 –풍기IC –영주 – 춘양 – 광석 매표소 – 입석 (11:15)– 응진전 –김생굴 – 경일봉(750m) – 보살봉(자소봉:845m) – 탁필봉 – 연적봉 – 뒤실고개 – 자란봉(795m) – 의상봉 (장인봉:870m) (14:45)– 전망대 – 하청량(16:20) – 양재 (20:40)
청량의 의미
청량(淸凉)은 말 그대로 맑고 시원하다는 뜻으로 일찍부터 콜라나 사이다에 붙어다니던 수식어다. 또한 청량리의 청량(淸凉)이 청량리동의 시원한 바리산 계곡의 청량사에서 나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알고 있다.
말을 쓴다고 닳겠냐고 반문 할 사람도 있겠지만 일상의 물건과 비슷해서 오래 쓰면 진부해진다. 달갑지 않은 것과 연관이 될 때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콜라나 사이다는 시원함보다 치아를 쉽게 삭게 한다는 개념 때문에 청량의 맛이 반감된지 오래고 청량리는 서울 동쪽의 철도의 관문이다 보니 어쩐지 시장바닥과 같은 이미지가 더 많다.
경북 봉화군에 있는 청량산은 불편한 교통 때문에 ``맑고 시원한`` 맛을 밀레니움이 바뀌기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간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앙고속도로가 뚫리고 일일권에 들면서 등산객과 여행객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거기다 승용차 1,000만대 돌파라니 인간의 발길이 더 늘어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청량함은 옛 말이 될게 뻔하다.
청량산가 (淸凉山歌)
(청량산 六六峰 아는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훤사(喧辭)하랴 못믿을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뜨지 마라 어주자 (魚舟者) 알까 하노라)
위 싯구에서 퇴계선생도 그 아름다움을 혼자 즐기며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던 것을 표현했다. 450여년인 지난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망가지기 시작할 테니 퇴계선생이 환생해서 본다면 뭐라 할까. 안동의 온혜(溫惠)가 고향인 그가 말년에 즐겨 찾던 산이었다고 한다. 호를 청량산인 (淸凉山人)이라고 지었을 정도이니까!
아카시꽃의 5월의 고속도로
경치가 좋다고 해서 한번 가보고 싶은 산이었다. 뫼솔 산악회에서 데려다 준다기에 친구(김종박)와 함께 아침 7시 양재역에 오니 나들이 가는 사람들이 부산하다. 신록의 5월을 그냥 보내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뫼솔도 만차 2대나 되니 일요일 수준이다.
07:10 서초구청 정문에서 예정시간 7시에서 10분 늦게 출발, 양재 사거리에서 U턴을 해 고속도로를 올라섰다. 길은 뻥하니 뚫려 있다. 어버이날 (5월 8일)과는 달리 아카시 꽃이 절정을 구가하고 있다. 5월 나무 꽃의 대표선수임에 틀림없다. 고속도로 가에 녹색 배경으로 눈송이처럼 주저리주저리 달고 있다. 산속에 허연 점박이는 모두가 아카시 꽃이다. 언뜻언뜻 나타나는 보라색 꽃은 오동나무 아니면 등나무. 두 번째로 많이 눈에 들어 온다. 틉틉한 붉은 색은 병꽃. 잠깐 쉬기 위해 문막에 들를 때(8:25-50)까지 아카시꽃 퍼레이드는 계속되었다.
중앙고속도로가 경북북부를 일일권으로
원주 못 미쳐 만종 분기점에서 중앙 고속도로를 갈아타면 더욱 한가하다. 금년 들어 세 번째. 달성의 비슬산과 창녕의 화왕산 갈 때도 이 고속도로를 탔다. 소백산 국립 공원을 넘어가는 5번 국도상의 죽령 (해발689m) 고개길을 4.6km의 터널을 뚫어 기존 40분 거리를 5분내에 통과하게 되어있으니, 중앙고속도로의 공로가 지대하다. 구절양장의 죽령이 자리하고 있는 이 고속도로의 제천-풍기 구역이 제일 마지막으로 개통된지도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터널을 빠져나와 얼마 달리지 않아 영주로 내려서기 위해 풍기IC를 빠져 나온다. 5번 국도로 들어서 가다 영주에서 36번 국도로 갈아 타게 된다. (09:45)
그렇게 온 산을 뒤덮던 아카시꽃이 사라진 걸 보면 오지인 이 곳에는 좀 이르다는 얘기인가. 그렇지 않으면 일제시대에 너무 구석이라서 심을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고속도로와 달리 국도라서 모든 주위가 가깝고 정감있다.
모내기가 한참
모내기는 반반인 것 같다. 기계로 하는 모심기라 농부들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심어있는 모는 너무 작아 뿌리를 흙속에 내릴 수 있을까 안쓰러워 보인다. 내가 어릴 때는 모 내고 나면 키가 커 푸른 기운이 확연했는데, 기술 발달로 어리게 심어 잘 키우자고 해 모가 심어져 있는지 의심할 정도다. 두루미가 마을 근처 논에서 노는 것은 사람이 적어 한적하게 먹이 사냥을 할 수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춘양목으로 유명한 춘양 옆을 비켜 지나 36번 국도와의 삼거리 분기점인 오미 (10:30)에서 35번 도로로 바꿔 남쪽으로 달린다. 여기서 청량산까지 24km. 소나무는 적갈색의 송화(松花)가 바늘잎사이로 꼿꼿이 그리고 빼곡이 앉아있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금방 날릴 태세다.
창녕에는 마늘이 많더니 봉화 이 곳 밭에는 고추가 대부분이다. 김치의 2대 양념. 사스 발병후 중국에서도 김치의 인기가 치솟는다는 데 이유는 마늘과 고추가 사스 바이러스의 활동을 억제 해 준다는 얘기다.
낙동강 상류를 왼쪽으로 끼고
10:45 명호에 이르니 낙동강 상류가 처음 왼쪽으로 나타난다. 넓은 강폭 중심부엔 물이 산의 녹음과 어울어져 짙푸르고 여유롭게 흘러내린다. 돌에 부딛히고 난 허연 거품도 다감해 보일 뿐 아니라 날씨가 더워지니 흐르는 물도 더욱 나른해 보인다. 작년 수해를 일으켰던 사나움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태백 황지에서 발원한다는 낙동강의 상류다 보니 ``1급 하천 낙동강``이란 표지판이 어색하지도 않다. 깎아지른 절벽을 따라 꼬불꼬불 흐른다. 우리가 가고 있는 청량산이다.
11;10 작년 태풍 루사와 폭우로 넘어가 다시 고쳐진 광석 나루터 다리를 건너 매표소(입장료 800원)를 통과 비포장 도로 입석앞에 하차. 양재역에서 4시간만에 주파. 입석이 단양의 도담삼봉의 축소판이라고 지은 이름이라는데 박대장님 말마따나 눈을 크게 뜨고 산행 들머리 건너 편을 봐야 바위가 있구나 하는 정도. 표지석이라고 생각하면 실망은 하지 않을 듯 싶다. 간이로 만들어 놓은 몇 개의 화장실은 당연히 남성들을 천연 화장실로 유도. 계곡으로 층층나무가 이름 그대로 층층이 아름답게 하얀 꽃을 이고 있는 모습을 즐길 여념도 없는 것 같다.
산행시작은 비포장의 입석에서
11:15 오솔길로 들어 섰는데 처음부터 오르는 길이 경사가 좀 심해 보인다. 90명 일행의 제일 후미를 이루며 따라 올라갔다. 굴참, 신갈, 상수리, 갈참 등 키 큰 참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준다. 특히 코르크를 만든다는 굴참이 많다. 작은 키의 나무꽃은 눈을 즐겁게 해준다. 5분 정도 지나니 서쪽으로 청량사(내청량사) 가는 삼거리 이정표가 있고 중년 남녀 둘이 다른 동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청량사를 안가 보면 어떻게 하냐``며 계획된 산행길을 일탈한다.
외청량사 (응진전)에서 축륭봉 조망
11:33 산자락을 휘어 돌다 보니 거대한 금탑봉 병풍 아래 조그만 공터에 청량사 부속 암자인 응진전(외청량사)에 이른다. 석가모니를 본존으로 모시면서 그 제자들에 대한 신앙세계를 함께 묘사한 법당으로 나한전과 성격이 비슷하다. 정면, 측면 각각 세칸의 조그만 암자로 석가모니불 양쪽으로 보살과 함께 랭킹에 들어가는 7-8명의 수제자들의 상(像)이 각각 서로 다른 모습으로 양쪽으로 봉안되어 있다.
금탑 모양이라고 해서 명명된 응진전의 수호봉 금탑봉. 침식된 바위벽에는 소나무들이 테를 두른 듯 뿌리를 내렸다. 바로 머리위에 있어 쳐다보다 고개 빠지겠다. 구름이 내려와 걸터 앉아 있으면 환상적일 것이다.
이 곳 응진전에 서니 축륭봉(845.5m) 능선이 시원하게 들어 온다. 청량산 능선을 따라 있는 12봉 [六六峰] 중 도로를 경계로 유일하게 남쪽에 있는 봉우리로 제일 아름다운 보살봉 (자소봉:845m)과 대칭이 되는 봉이다. 축륭봉에서 동쪽 청량산 휴게소 근처까지는 고려 공민왕이 중국 홍건적(1359-60)의 침입을 피해 이 곳으로 들어와 쌓았다는 청량산성의 흔적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12봉은 장인봉 (의상봉), 외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보살봉), 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 경일봉, 금탑봉, 축륭봉. 이중 8개가 암봉. 대(臺)가 12개인 걸 보면 봉우리와 짝을 맞추기 위한 건가.
경내에는 산신을 모시는 산영각이 응진전과 입구 샘 사이에 있다. 허름한 요사체는 울타리 밖에 자리를 잡고 있다. 시원한 물을 한 바가지 들이키고 돌아 나왔다.
최치원 선생과 총명수
11:37분. 5분도 채 못 가 오른쪽 길가에 샘 같지 않은 샘에 총명수(聰明水)란 팻말이 나온다. 최치원 선생이 이 물을 마시고 머리가 좋아졌다 (귀가 밝고[聰] 눈이 밝아짐[明])고 전해 내려온다. 그런데 지금은 이 물이 거의 메말라있고 사람들 발길로 마시려는 사람이 없다. 팻말만 없으면 거들떠 보는 사람도 없을 것 같다.
청량사를 치운대에서 조망
11:40분. 응진전을 나와 왼쪽으로 금탑봉을 끼고 돌아 가니 어풍대. 박대장은 치운대(고운대)라고 한다. 계곡 넘어 북서쪽 중턱에 청량사가 그림같이 내려다보인다. 사진 한 컷. 깎아 지른 웅장한 보살봉 밑에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다. 663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절. 총명수에서 물 마시고 이곳 치운대에서 공부를 했다는 고운 선생도 그림 같은 청량사를 나처럼 바라봤을까? 이 절의 위치는 12봉의 한 가운데로 연꽃의 꽃술에 해당한단다. 오대산의 적멸보궁과 비교되나 규모면에서는 아무래도 작지만 절묘한 명당자리다.
청량사는 약사불을 모시는 유리보전이 주 법당. 공민왕이 썼다는 현판의 ``琉璃寶殿``과 종이로 만들었다는 지불(紙佛)은 이 절의 진귀한 보물. 동방 ``유리광``세계에서 병든 중생을 해탈시켜 준다는 약사여래를 모시는 불전으로, 일반적으로 약사전이라 하는데 여기서는 약사불이 거처하는 곳을 따 불전 이름을 지었다. ``寶``자는 부처님을 최소한 한 분 더 모시고 있다는 뜻으로 왼쪽에는 석가불이 안치되어있고 약왕보살이 오른쪽 협시로 되어 있다. 종이로 만든 약사여래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것으로 지금은 금칠이 되어있단다. 층이 가파르게 올라간 5층 석탑은 세월의 때가 덜 묻어 허옇다. 범종각 아래로 침목길을 따라 내려오면 옆에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이름의 멋진 전통 찻집을 절에서 운영해 들르는 산행객에게 이름 만큼이나 멋진 분위기를 제공해 준단다.
무엇보다도 연꽃같은 산세를 사방으로 올라다 볼 수 있어 이 절을 들르지 않으면 정수를 빼놓는 거라는데 이 곳에서의 절만 내려다보는 걸로 만족해야 되니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룰 수 밖에…
김생이 글씨공부했다는 김생굴
11:45분 아무래도 우리 둘이 너무 쳐지는 것 같다. 서둘렀다. 신라시대의 명필 김생이 서도(書道)를 닦았다는 김생굴이 경일봉 아래턱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말이 굴이지 바위가 눈썹처럼 위쪽에 조금 돌출해 있어 약한 비를 막아 줄 정도다. 수성암 중 이암으로 되어 있어 쉽게 부서지지는 않을 것 같다. 이산에는 김생굴을 포함 8개의 굴이 있다. 금강굴, 원효굴, 의상굴, 반야굴, 고운굴 등.
김생이 이 굴에서 서도를 닦던 중 다 끝난줄 알고 9년째에 내려가려고 할 때 봉녀라는 아리따운 아가씨가 나타나 길쌈과 글씨 솜씨 내기를 하자고 해 지고는 1년을 더 해 10년 만에 득도를 했다는 이야기다. 한석봉의 글쓰기와 그의 어머니의 떡 썰기에 대한 일화는 김생이 원조인 듯 싶다.
사진 한 컷 담고 재빨리 뒷 걸음질쳐 경일봉을 가기 위해 흙이 푸석푸석한 가파른 길을 따라 능선으로 올라섰다. 여기서부터는 경사가 완만하다. 잘 뻗은 적송이 군데 군데 밑동의 둘레 껍질이 1/3정도 도려내진 모습을 하고 있다. 봉화군 춘양면의 특산물로 ``춘양목``이라 불리는 이 적송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우수 소나무로 알려져 있다. 햇수가 얼마 안된 끝 가지는 붉으스레한 껍질이 비늘처럼 겹겹이고 원 줄기는 거북이 등처럼 골이 선명하게 패여 있어 보기도 좋다. 그런데 밑에 그렇게 크게 흠집을 내 놓은 이유는 뭘까? 그리고 누가 그랬을까? 김국장은 자꾸 되뇐다.
역시 참나무는 이곳의 주된 수종이다. 참나무가 많으면 버섯생산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넘어져 있는 것들이 많지 않은 걸 보면 자연산은 역시 많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12;15분 암석이 아닌 경일봉(擎日峰, 750m)에 올라오니 무덤이 하나 있다. 이런 무덤을 보면 얼마나 좋으면 이렇게 높은 곳 까지 올라오는지 항상 궁금하다. 잘 보살피지도 않은 걸 보면 흥하는 집안도 아닌 것 같다. 주위에 소나무와 참나무가 시야를 가려 전망은 좋지 않다. 서쪽에서 보면 해가 이 봉우리에서 올라 온대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내산의 주봉 자소봉
13:00 철계단을 따라 내리락 오르락 하다 처음 마주치는 암봉이 내산(內山)의 주봉인 자소봉 (보살봉:845m). 역시 2단의 철사다리를 놓아 쉽게 오를 수 있게 돼있다. 한 팀이 점심을 먹느라 분주하다. 남쪽과 북쪽이 시원하게 트여있다. 김국장이 오이를 하나 꺼내어 준다.
이 곳 청량산의 특징은 수성암이 까마득한 옛날 융기해 연성질이 깎여 종 모양으로 우뚝 우뚝 서 있다. 중국 계림의 산들이 평지부터 서 있는데 비하면 여기 청량산 암봉은 대부분 능선에 서 있다. 대부분의 암봉은 자갈과 여타 잡석들이 씨멘트로 버무려진 조악한 콘크리트같다. 그래서 자갈이 빠져 나간 곳이나 침식받은 부분이 많아 마치 천연두를 크게 앓은 것 같다. 그런데 소나무가 머리 위나 암벽틈새를 메꾸고 있어 돌에 뿌리를 내리는 나무로 여기기 쉽상이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보이는데 소나무와 어우러져 눈요기로 그만이다. 가을이면 참나무의 단풍이 가세해 절경을 이룰 것 같다. 이암이나 사암은 시루떡처럼 층을 이뤄 틈틈이 소나무가 달라 붙는다.
01:13 다시 내려와 왼쪽으로 끼고 도니 이름표를 옆에 세우고 떡 버티고 서 있는 탁필봉. 글씨 쓰는 붓 같아서 붙인 이름이란다. 역시 이 봉우리도 자갈등 잡석이 만들어 놓은 퇴적암. 붓으로 글씨를 쓰려면 벼루가 있어야하고 물담는 연적이 필요하다. 벼루는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연적봉을 바로 옆에 만들어 놓았다. 철계단을 올라서니 동쪽 코앞에 탁필봉이 자소봉을 배경으로 눈아래로 다소곳이 서 있다. 남쪽 중간 쯤에는 뾰족한 종 모양의 암봉이 하나 쉽게 눈에 들어온다. 역시 정상에는 소나무가 자리잡고 있고 절벽에는 떡시루 층처럼 되어 있어 소나무가 테를 두르고 있다. 사진 두어 컷.
01:30 의상봉까지는 뒤실고개로 명명돼있다. 암릉을 지나다 철계단을 내려오니 청량사로 내려가는 고개마루에 유니폼을 입은 젊은이들이 올라와 쉬고 있다. 다시 바위가 움푹진푹한 암릉을 올라 오솔길을 지나다 보니 제철을 기다리는 원추리가 옆으로 제법 많이 나타난다. 능선을 지나다 보니 서쪽 건너편에 단애가 나타난다. 자란봉(795m). 암벽에는 수분없이 말라 비틀어진 바위손이 더덕더덕 붙어있다. 오염이 없어야만 산다는 양치류. 북한산에도 예전에는 있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약제가 되어 싹쓸이 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우리는 70가까운 노 부부와 후미 가이드와 점심을 먹기 위해 낙엽위에 자리를 잡았다. 산행 3개월 되셨다는 할머니는 산에 오는 것 같이 좋은 게 없다며 산행 예찬론을 피력하신다. 건강 좋아지고 수려한 경치 구경하고… 마누라도 권해서 같이 다니란다. 생각이야 꿀떡 같지만 어찌 그게 나 혼자 맘으로 될 일인가. 이 번 팀은 부부들이 참 많은 것 같다. 부러웠다. 배가 차니 기운이 난다. 김국장이 내 놓은 매실주도 두 잔이나 했다. 다시 일어섰다. (02:00)
막다른 협곡을 지난다. 마치 학이 공중으로 솟구쳐 날아 오르는 듯해서 붙여진 선학봉(821m)과 자란봉 사이의 협곡. 60-70도 경사에 좁디좁아 밧줄을 사이사이 잡으며 한 사람씩 올라야 한다. 두 노부부를 앞세운 제일 후미다. 잘못하면 돌들이 흘러내린다. 어쩌면 이래서 산에 다니는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많이 본 것인데 계속 눈에 띄는 풀꽃은 이름을 알 수 없다. 안부에 이르니 먼저 올라온 두 등산팀이 휴식을 취한다. 한뫼, 솔뫼. 나는 뫼솔. 뫼자 항렬의 등산 클럽 셋이 모였다. 종친회하자고 약속을 했나 싶다. (02:30)
여기서 다시 한번 내려갔다 치고 올라가야 정상 의상봉이다. 가파른데 두 노인네가 꾸준히 잘 오르신다. 뒤에 왔던 두 팀이 이내 앞지른다. 청량산 정상인 의상봉에 이르니 원형으로 흙산이다. 표지석(870m)과 간단한 설명이 있다.
의상봉
(청량산의 최고봉으로 높이 870.4m이며 봉상(峰上)은 주위가 약200 미터이며 측면 사방은 만장절벽(萬丈絶壁)의 단애로 둘러 싸여있고 정상은 백구형의 황토층 토질로 형성되어 만병초 (萬病草)등 각종 고산 식물들이 자생(自生)하고 있다. 봉명의 유래는 1,300여 년 전 신라중엽의 고승이며 화엄종의 시조이신 의상대사께서 입산 수도 한 곳이라 하여 불리워졌고 산 중턱에는 의상대사가 수도하던 의상대와 그가 기거하던 의상굴이 있으며 그 잎이 파란 솔만큼이나 넓어서 우산을 대용할 정도인 매우 희귀한 식물인 강연 (崗蓮)이 자생하고 있다.) 표지판의 의상봉 소개 내용이다.
산이 괘찮다 싶으면 의상과 원효는 감초격으로 끼어 있다. 의상은 이곳에 의상봉외에 의상대와 의상굴을 남겼다. 강연은 무슨 풀인가. 사진이라도 있으며 상상해 볼 수 있으련만 물어볼 사람도 없다. 안내판과 표지석 사이에 둘이 서서 사진 한 컷.
낙동강과 화전밭이 서쪽에
우리는 서쪽으로 몇 발자국 걸어 가 스테인리스 난간을 만들어 놓은 전망대로 갔다. 서쪽을 바라보니 단애 아래로 낙동강이 이 산자락을 휘감고 남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서쪽 넓은 산위에는 화전민인지 통째로 밭을 일궜다. 보기드문 광경이다. 이 상류는 은어축제가 봄과 여름에 걸쳐 있단다. 9월에 있는 송이축제와 함께 봉화의 2대 축제. 청정한 물에 들어 가 고기를 더듬어 보고 싶다. 24km 내려가면 안동, 29km 올라가면 봉화 읍내. 특유의 퇴적암이 비져 놓은 청량산의 하이라이트다. 퇴계선생이 숨겨 놓고 싶었던 이유를 알겠다. 사진 한 컷 디카에 담고 하산을 시작했다. (2:45-55)
왠 경사가 이렇게…
거의 직벽에 가까운 하산길. 조그만 돌을 건드려 흘러내리기만 하면 먼저 내려가는 사람들에게 치명타를 줄 정도다. 그래도 돌은 자주 구르지만 중간에서 인터셉트를 하는 바람에 사고는 없었다. 그렇게 내려오기를 20여분 (3:20) 굵은 칡줄기가 곳곳에 치렁치렁 늘어져 있어 타잔이 놀던 곳이 아닌가 싶을 정도. 그런데 칡꽃은 하나도 없다.
(내산은 어엿이 승경을 모두 갖추었는데
외산은 다시 깎아지른 듯 가파르구나
아래로 만장(萬丈)의 골짜기를 이루었고
중간쯤엔 매달린 듯한 암자가 네 다섯
아픈 다리로 험한 곳 오르기가 쉽지 않아서
용자(勇者)에게 사양하고 스스로 달갑게 물러 섰노라
홀로 돌아와 일실(一室:암자)에 고요히 앉으니
초연한 이 마음이 스스로 이 마음을 알았노라)
퇴계선생도 외산의 험악함을 알고 도중하차했다는 얘기다.
연세가 60이 넘어서 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중간에 한번 쉬고 외딴 인가에까지 왔다. 내내 만난 꽃을 아저씨에 물어보니 함박꽃이란다. 알아보니 산조팝 같은데... 우산모양으로 가지런히 꽃을 달고 있다. 산딸기 덩쿨도 많아 7-8월이면 맛 볼 수도 있으련만 지금은 그냥 내려 올 수 밖에 없다. 건너편 산에는 물줄기가 시원스럽게 떨어진다. 청량폭포.
상경길에서
내려오니 이미 버스 한대는 가버렸고 두 번째 차도 우리 둘을 기다리고 있다. 4:20분 출발.
풍기IC를 올라 타는 가는가 싶더니 이상한 길로 마구 달린다. 그래도 들과 산자락을 지나니 좋다. 아카시꽃 축제는 계속된다. 어쩌면 남한 전체가 아카시 꽃과 향내에 취해있을 지도 모르겠다. 마치 전국적으로 시위를 벌이기라도 하는 것 같다. 화물연대와 달리 다 제자리에서. 조상의 묘를 파고 들고 다른 나무들을 못살게 군다고 해서 부정적 이미지만 갖고 있는 국민에게 이 화사한 꽃과 향기로 이미지 제고를 해보겠다는 것 처럼 보인다. 꿀을 따는 벌통들은 산속 깊숙히 들어갔는지 볼 수가 없다. 아카시나무가 사람에 주는 2대선물.
그런데 이상하게도 청량산에 오르내리면서 한그루도 못 봤다. 그저 차 타고 지나면서 꽃만 보고 향내는 맡지 말라는 뜻인가. 양재에 내리니 우면산에서 흘러내리는 아카시 향기가 코를 찌른다. (8:40) 그냥 지나치기 아까워 둘이서 향내를 맡으러 서초구청 청사로 들어가 벤치에 10여분 앉아있었다. 지난 목요일 저녁 오페라 마적을 보러 예술의 전당에 갔을 때 우면산에서 진동했던 그 향기. 짝이 없는 청춘 남녀는 그곳에 가면 저절로 아카시향과 분수대 음악에 취해 짝을 찾아 쉽게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에필로그
옛날에는 대단한 오지인 봉화의 청량산 북쪽 능선을 일주했다. 12봉, 12대, 8굴, 4약수가 저마다 볼거리를 만들어 주는 산. 무엇보다도 석질은 별로지만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암봉이 인상적이다. 소나무와의 조화는 일품. 마치 서로 공생관계인 것 같았다.
그리고 퇴계선생을 비롯, 공민왕, 김생, 원효, 최치원 등 선이 굵직 굵직한 역사인물들이 많이 관련되어 있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였다. 시대별로도 신라, 고려, 조선 등 고르게 배분이 되어 있다. 산이 좋아 한번씩 와 봤다는 얘기다.
그런데 산행위주가 되다보니 길목에 없으면 그냥 지나쳐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산의 하이라이트 일지 모르는 내청량사. 기회를 꼭 만들어야겠다.
그리고 5월의 교목왕 아카시. 아카시꽃이 만개하니 우리나라 산들은 아카시만 있어보인다. 버스를 타고 오가는 중에 보니 전국이 아카시 꽃 축제중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아카시 향내로 다 취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묘하게도 청량산에서는 한그루도 못 만나 내내 향내는 맡아보지 못했다. 적송 춘양목과 참나무들이 들어서지 못하게 다 밀어낸건가!
끝
<채희묵 chaehmook@hanmail.net>